♧ 범벅을 아는 당신이라면
만만한 메밀가루 한 줌으로 뭉뚱그린 끼니
범벅 중에 범벅은 식어도 괜찮은 고구마범벅
빈속으로 쑥쑥 크라며 겉과 속 다른 호박범벅
참다 참다 배고플 땐 감자 듬뿍 감자범벅
아무 생각 없을 땐 무로 쑤는 무범벅
눈물방울 보일 땐 당원 한 방울 범벅
떡도 밥도 죽도 아닌 덩어리로 배 채우며
어려 고생은 약이라고 달래시더니
아, 그게 역경이라면 오늘은 땡초범벅을
♧ ᄒᆞ다 ᄒᆞ다
수백만 송이송이 귤꽃 터지는 오월
사나흘 밤낮 공들여 다섯 꽃잎 펼치고
가운데 노란 점 하나에 온갖 치성 들이는 봄
ᄒᆞ다 ᄒᆞ다 어느 한 잎도 아프지 말게 해줍써
ᄒᆞ다 ᄒᆞ다 눈 맞은 사름 만낭 시집 장게 보내 줍써
비ᄇᆞ름 맞당도 남앙 곱게 익게 해줍써
♧ 오몽 예찬
오몽해사 살아진다 오몽해사 살아진다
말해 뭐하나 돈도 자식도 있으면 좋지
경해도 “지 먹은 오몽은 해사”
선배님들 십팔번
하루살이라기엔 믿을 수 없는 누네누니추룩
일이 밀리 몸으로 지하 건설하는 게염지추룩
방앗간 그냥 못 지나는 밥주리생이추룩
사는 건 순간순간 대체불가 몸의 노릇
묶을 것도 밑줄 칠 것도 별반 없는 생애
오늘의 몸을 굴려서 내일의 몸에 닿는다
♧ 지읒 하나 차이
금자 영자 순자 명자 정자 옥자 복자 삼춘!
공짜 타짜 걸짜 가짜 몽짜 굳짜 판치는 데
ᄎᆞᆷ지름
ᄎᆞᆷ외
ᄎᆞᆷ메역
ᄎᆞᆷ깨
ᄎᆞᆷ으로만 주시는
우리 삼춘
♧ ᄋᆞ
우주가 우주 밖으로 쏘아올린 씨 한 톨이
반쯤 핀 꽃잎처럼 입을 열어 ᄋᆞᄋᆞᄋᆞ
지구를 백 일쯤 돌아 처음으로 터트리는 소리
할머니가 ᄋᆞᄋᆞᄋᆞ 하면
아기가 ᄋᆞᄋᆞᄋᆞ
ᄋᆞ가 옹알이 되고 옹알이는 말이 되어
할머니 나 사이에는 오래 ᄋᆞ가 살았네
두 팔 벌려 안아주던 설문대할망 품의 소리
‘아’니 ‘오’니 하다가 휘파람처럼 날아간 소리
우주가 태어날 때마다 여전히 ᄋᆞᄋᆞ는 들려
* 김정숙 시집 『섬의 레음은 수평선 아래 있다』(한그루, 2023)에서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시조' 2023 제32호의 시조(1) (2) | 2023.12.06 |
---|---|
나기철 시집 '담록빛 물방울'의 시(6) (0) | 2023.12.05 |
김혜연 시집 '근처에 살아요'의 시(3) (1) | 2023.12.01 |
월간 '우리詩' 11월호의 시(5) (1) | 2023.11.30 |
나기철 시집 '담록빛 물방울'의 시(5) (0) | 2023.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