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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나기철 시집 '담록빛 물방울'의 시(6)

by 김창집1 2023. 12. 5.

 

 

처서處暑

 

 

내내 꽂혀 있던

붉은 파라솔

 

아침에

옆집 담벼락에

기대 있다

 

거두어

집에 들여 놓았다

 

한라산도

불을 뿜을 때가

있었다

 

이젠

조용하다

 

 

 

 

독립서점

    -주인의 말

 

 

망해도 괜찮다는 생각

 

지금도 같다

 

얼마든지 망할 수 있다

 

근데 잘 망하고 싶다

 

조용히

 

 

 

 

한숨

 

 

살아있는 문어를 사서

차 뒤에 놓고 오는데

이따금

푸우

푸우

 

열흘이 지나도

냉장고에서

죽은 그를

꺼내지 못한다

 

 

 

 

자유

 

 

살면서 때때로 오는 두려움이

얼마나 두려웠으면

카잔차키스는 마지막,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외쳤을까

 

늦게 미룬 밥상 앞에 앉아

두려워 밀쳐둔 고기부터 씹는다

씹으면 불편한 내가

 

어느 시인은 익사할 뻔한 뒤

일부러 깊은 물에 몸을 던졌다 한다

 

 

 

 

일주동로一走東路

 

 

서귀포 가는

동쪽행 버스를 탔다

 

건너편 창가

혼자 앉은 여자

뭐라 가끔 중얼거리다

가끔 울먹인다

 

육십 년 만에

새 되어

고향 가신

어머니

 

북쪽 향해 있는

해상 풍력발전기

날개들

 

 

                *나기철 시집 담록빛 물방울(서정시학,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