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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3월호의 시(2)와 백목련

by 김창집1 2026. 3. 23.

 

♧ 몽당연필 – 김용태

 

하루가 몽당연필

밥 한 숟가락 먹는 시간처럼

짧았다

 

입맛을 느낄 틈도 없이

후루룩 삼킨 하루였다

바람처럼 스쳐 간 하루에

씹지 못한 일과는

어둠이 삼켰다

 

배고픈 빈 그릇처럼

동지 날을 비웠다

 

 

 

♧ 봄날 – 김은옥

 

아침 햇살 파닥이는 플래카드 아래 꽃나무 사이

 

지나가는 사람들 허리 아래쪽만 보인다

 

검정 하양 초록 색색마다

 

연분홍 꽃무늬가 스친다

 

아이 업은 흰머리가 걸어 간다

 

흔들거리는 아이 왼쪽 노랑 종아리와

 

흰머리의 왼쪽 밤색 바지 옆구리를

 

살짝살짝 기대는 듯 즐거운 듯

 

연분홍 꽃잎이 살랑살랑

 

잡았다 놓았다

 

오늘은 플래카드가 가려 놓은

 

사람 꽃들이 유난히 빛나는 봄날이다

 

 

 

♧ 위기 – 김정서

 

쇠뜨기 생식 줄기가

잠망경처럼 고개 들어 봄을 찾아내니

봄은 냉동 재료로 성찬을 차려냈다

떼로 핀 꽃들로 화관을 두르고

높낮이 없이 연두로 병풍 친 나무들과

잔치가 한창인데

너나들이하며 짝 맺기 해주던

붕붕 무희들이 오지 않았다

단단히 토라진 게 분명하다 큰일이다

정말 큰일이다.

 

 

 

♧ 이명 - 김정원

 

혀끝에서 흩어지는 말들은 대개

타작마당에 날리는 쭉정이들이다

 

씹어도 단물이 나오지 않는

바싹 마른 언어들이

거리에 먼지가 되어 쌓여만 간다

 

저 무수한 껍질들에게 무게가 있었다면

지구는 우주에서 떨어진 유리알처럼

진즉 궤도를 잃고 박살 났으리라

 

알맹이 없는 위로와

농담의 비곗덩어리들이

하수구 거품으로 부풀어 오르는 세상

 

귀를 막아도 틈을 비집고 들려오는

질긴 소음들 사이 오직 하나,

내 귓속에 박힌 소리만이

녹슬지 않는 못이 되어 울린다

 

푸석한 모든 말들을 쓸어내고

고막 안쪽에서만 팽팽히 맴도는

찰진 참말 하나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말

 

 

 

♧ 생각이 많은 밤 – 김종옥

 

칼날 위 꿀처럼 흐르며

점점 더 시리게 빛나는

한 아름 한꺼번에 핀 저 별빛

밤새 품 안으로 안고만 있다

눈 감으면 푸른 얼굴로 쏟아지는

꿈결의 목련 지듯이 내리고 있나

밤하늘 바다에 녹은 소금꽃 같은

더 눈부신 내일이라는 너,

달빛 즙과 함께 손등에 얹어 조금 핥고

진한 눈물의 독주를 삼킨다

짭쪼롬한 별밤 입속에서

혀에 젖는 꽃잎으로 녹아내리고

아직도 달고 쓴 꿈으로 마시고 있는

어둔 밤의 눈부신 슬픔이 잠든다

광야에 핀 꽃같이 곧 말라 버려도

별빛 사금 가루들 입술을 스친다

너무 밝아서 보이지 않아도

사랑하면 빛날 것이다

 

 

                        *시 - 월간 『우리詩』 3월호(통권 453호)에서

                             *사진 - 요즘 한창인 제주의 백목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