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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애월문학' 2025년 제16호의 시(완)

by 김창집1 2026. 3. 25.

 

♧ 그대에게 – 하림

 

부디

외면하지 말아요

의뭉스럽다 눈 흘기지 말아요

 

목구멍을 가르며 치솟는 말숨

애써 삼키고 있어요

분홍의 고운 혀에

검붉게 독이 을라요

앙담은 입술이

파르르 떨려와요

 

따스한 숨결로

다정한 눈빛으로

가까이 다가와요

간절함이 느껴지나요?

당신의 마음이 들리나요?

 

 

 

♧ 잔상殘像 - 강상돈

 

겹겹이 감싸안은 낡니 낡은 솜저고리

허리춤 배배 꼬인 그늘 길 뒤척이며

골목길 끝자락에서 움켜쥔 고요 한 줌

 

버려진 장판 밑에 숨은 낮의 기척

굳은 마음 지나온 발등의 먼지들

절반쯤 무너진 틈에 달빛은 말라붙고

 

조각난 무릎 덮은 삐뚤어진 털실 뭉치

하늘 마저 휘청이는 늦저녁 담장에

단말기 울리는 카드음 오래도록 맴돌았다

 

 

 

♧ 돌매화 – 김영란

 

눈부신 고독이라야 찬란히 빛이 나죠

절벽 끝 바위틈에 외발로 선다 해도

순백의 향기를 품고

피어나는 사랑처럼

 

흔들리지 않으려고 자꾸 키를 낮췄어요

해맑고 투명하게 살아보고 싶어서

남들이 가지 않은 길

혼자서 걸어왔죠

 

하늘이 내어준 그만큼의 자리에서

서둘러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면

마지막 인사말쯤은 바람에게 맡겨요

 

 

 

♧ 사소한 편린 – 김윤숙

 

칠성통 극장은 새로움의 문명지대

하굣길 어느새 대형 간판 매표소 앞

머뭇대 불쑥 들어선 너 오랜만에 만난다

 

규율을 거부한 그 치기는 불시검문

영화는 또 한 권 독서, 깊이 빠져들고

마차는 설원을 달린다 얼어붙는 애련으로

 

잊혀질만하면 다시 트는 공중파 명화감상

생명과 맞바꿨던 지바고의 절대혁명

홀연히 마주친 그때, 농담처럼 손이 얼다

 

 

 

♧ 박수기정 샘물 – 문순자

 

바가지로 떠먹는 샘물이란 이름처럼

바다직박구리 뱉어논 보리밥나무 씨앗처럼

화산재 식기도 전에 뻥 뚫은 파도처럼

 

그 구명 거슬러와 퐁퐁 솟는 용천수

불더위에 목타는 대평포구 빨간등대

바가지 있으면 뭐하나, 그림의 떡만 같은

 

 

 

♧ 산국의 기억 – 장승심

 

이제는 지워졌을 등산로 위 내 발자국

그 산빛 고운 단풍 아직도 선연한데

자취는

물처럼 흐르고

발효하는 기억들

 

많이도 올랐건만 내려오니 아득하고

흘러가는 강물이 쓸어내린 강바닥 돌

모래톱

쌓인 그 기억

잊지 못할 산국화

 

 

 

♧ 숲을 그리다 – 장영춘

 

숲을 그렸는데 안개가 몰려왔다

비 온 뒤 만개한 산수국은 어딜 가고

아직도 지우지 못한 회색빛 가득 찬 방

 

한참을 응시하다 스멀스멀 번지는

형체 없이 무너지는 코발트 빛 숲속에

안개를 뚫고 왔구나, 너 있던 그 자리

 

묵묵한 몸짓으로 어제를 덧칠하듯

그래도 꺼내 볼 색깔은 지녀야지

산수국 가장자리에 파랑이 몰려왔다

 

 

                           *애월문학회 간 『涯月文學』 2025 제16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