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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젊은시조문학회 '돌돌돌 흘러온 시간'의 시조(4)

by 김창집1 2026. 3. 26.

 

♧ 할머니의 구절초가 핀다 – 최은숙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길섶을 만들었다

꽃들도 내리지 않은 질퍽한 땅 위에

무슨 말 필요했을까? 울다 지친 흙탕물이다

 

사랑 한번 못해본 소녀들이 어둠 속에 흘렸다

구절초 꽃잎들이 밤낮 상관없이 떨었고

눈 감고 귀를 닫아도 오장육부는 뒤틀렸다

 

살아라 죽고 싶어도 끝까지 살아라

탕탕탕 울려오는 소리 가슴에는 천둥이 친다

어머니 저 못 살겠어요 이렇게는 못 살겠어요

 

상처에 상처를 입고 어디까지 흘러왔을까?

시간이 지났어도 푸르른 그 눈동자

깊숙이 박힌 못들이 눈빛 속에 환하다

 

 

 

♧ 그해 겨울의 파흔 – 강영미

 

사뿐히 발 디뎌도 자꾸 지워져 갔네

한모살 가슴팍에 길게 쓰여진 파흔

바다를 밀어내면서

그해 겨울을 읽었네

 

팔월 땡볕을 넘겨도 목구멍이 서늘해

젊은 사진으로 남은 할아버지 발자국

여길까, 저기였을까

칠십칠 년 묻은 자리

 

진실을 비켜선 건 바다가 아니었네

마주 보지 못한 자의 짜디짠 침묵 같은

물거품 쓸어 버리며

다시 쓰고 있었네

 

 

 

♧ 간절기의 말 6 – 강은미

    -단추 한 알

 

만질 수 없는 것들이 사무치게 그리운 날

 

사람 드문 숲에 안개처럼 고요히 스며들면

 

아직은 살얼음인 듯 서로 낯설고 서먹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들 이 계절에 떠나서

 

살갑지 못했던 손길을 자꾸 매만지게 하는가

 

앉지도 서지도 못한 화살나무 가지 끝에

 

내 마음의 방향을 닮은 서릿발 하나가

 

마지막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로 남아

 

장태코 서쪽 능선의 피 울음을 증언하네

 

 

 

♧ 노모의 웃음바다 - 고혜영

 

까르르 까르륵 물새가 노래하듯

아흔다섯 어머니는 그렇게 웃으신다

주름진 입술 사이로 물보라 피어난다

 

그 바다 언저리에 열다섯 봄이 돋고

“혜영아, 나 너 좋아!" 친구가 돼버린 딸

어쩌다 눈 마주쳐도 얼굴 감싸며 까르르

 

나이는 들었어도 마음은 늙지 않아

지워진 수평선에 바다 품은 해녀 마음

어머니 웃음바다에 해초들이 자란다

 

 

 

♧ 마주보기 – 김미영

 

투명한 마음처럼 햇살 든 창문 앞에

여섯 살 아들 같은 어랑어랑 질경이가

밖으로 나가고 싶어 창문 톡 톡 두드린다

 

한 걸음에 이파리 하나 아장아장 담쟁이

눈빛 시린 유리창에 얼굴 딱 붙이고

열어 봐 나 여기 있어 마주 보고 웃는다

 

 

                *젊은시조문학회 간 『돌돌돌 흘러온 시간』 (한그루, 2025)에서

                                         *사진 : 요즘 한창인 자목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