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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나기철 시집 '담록빛 물방울'의 시(8)

by 김창집1 2023. 12. 20.

 

 

먼 곳

    -이시영 풍

 

 

  국장으로 퇴임한 시인이 성산일출봉이 훤히 보이는 집 앞 공터에서 포장을 몇 개 치고 단상도 만들어 시집 출판기념회를 하는데, 끝나 몇 해 전 김 약사네 집 밖에 와 사는 팔순 넘은 이제하 시인이 나중 추첨자의 하나로 나가 몇 번 손을 넣었다. 허름한 모자에 편한 옷을 걸친 그가 아무 말 없이 돌아와 아픈 듯 아픈 듯 사람들 틈에 앉아 다시 먼 곳을 바라보았다.

 

 

 

 

평화양로원 3

 

 

사람 하나 안 보이던

건물 밖

 

정문 쪽에

할머니 둘 나와 있다

 

어르신들, 빨리 들어가세요!

다칠 수 있어요

 

세 살 난 어린앤가,

괜찮아, 괜찮아

 

다시

고요해진

 

 

 

 

노래할 곳

 

 

엘싱타사르헤 초원

겔에서 짐을 풀고

저녁을 먹고

빠져 나와

 

초원의 멀리까지

가서

힘껏 노래를 불렀다

 

말들이

드문드문

 

한참 후

한 사내가 말을 타고 와

검지로 입을 막고

돌아갔다

 

 

 

 

임파선

 

 

태풍 타샤는

어디로

가 버렸나 부다

 

주말 이틀 내내

머리채 잡고

울리더니

 

오늘은

누군가

따스한 입김으로

달래 주신다

 

갑자기 솟아오른

팔뚝의 붓기도

많이 가라앉았다

 

 

 

 

늙은 병사의 말

     -양동윤

 

 

이윽고 잠잠해진 구제주

버스 정류장 앞에서 만났다.

 

폐암 와 1년 선고 받았는데

살아났어. 이제 갈 순 없어서.

이 나이에도 도민연대 매일 나가고

43 못 그만두는 건 솔직히 나처럼

할 후배 없어서. 글 쓰는 이들이 현

장에 안 와. 20년 전 머무르고 있고.

 

50년 전 심지다방 판돌이,

30년 전 한결같은 얼굴.

이제 성자 같다.

 

 

            *나기철 시집 담록빛 물방울(서정시학, 2023)에서

                         *사진 : 요즘 한창인 애기동백(흰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