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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애월문학' 2023년 14호의 시(1)

by 김창집1 2023. 12. 22.

 

 

사랑의 시간 강선종

 

 

오늘을 살면서

그대를 사랑함은

함께 부둥켜안고 가야 할

세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보다

그대를 사랑함은

함께함이 행복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그대를 사랑함은

내 안에 그대가 살아있어

심장이 고동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그대가 있듯이

나 또한 그대의 마음속에 자리하여

길고 긴 눈맞춤은

영원을 함께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이별 - 강연익

 

 

어느 날 병문안을 가서 고통스러워하는

그에게 위로의 말이 될까 싶어

우리가 맞이하는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새 옷을 갈아입는 제식이 아니겠느냐,

위로를 해 보았지만 친구는 말이 없었고

이제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져 가고

영혼은 훨훨 새처럼 날아 구름 사이로

사라져 갔다.

 

한 많은 세상 떠나는 길에 잘 가라고 이별에

손 흔드는 아쉬움이 내 마음을 적신다.

꿈과 사랑이 사라져 황량한 텅 빈 들판에는

이별의 괴로움들 추억의 조각들로 바람에 날려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삶의 구석을 메꾸어 주던 추억마저 사라지고

산 자의 눈망울에 이름 석 자 비석 하나를 남기고

떠나가는 친구야!

말 한 마디 미소 한 번 따뜻하게 나누지 못했어도

영원한 이별 앞에 내 뜨거운 눈물이

너를 사랑했고 충분히 사랑 받았다는 사실과

그 동안 친구로 살아준 고마움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휑하니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인생의 허무함이

가슴속 눈물을 짜내며 명복을 빈다.

이제 고통이 없고 네가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

삶의 이치를 누구보다 일찍 터득하며 비움을 실천하였고 있는 그대로의 삶에 만족해하던 친구야

영원히 같이 할 수 없음을 알았지만 너의 침묵 속에 모든 게 이제 묻히게 되는구나.

잘 가게나! 더 좋은 곳을 향해 잘 가거라, 친구야!

 

 

 

 

행복 김동인

 

 

깜깜한 서재의 등을 켜고

가스스토브를 켠다. 스토브를 몸 가까이에 끌어온다.

등산용 안락의자에 앉아

유리 창문 너머 노랗게 탐스럽게 익은 하귤 열매를 쳐다본다.

그 너머 웃고 계신 장모님이 편안한 미소로 나를 반긴다.

눈뜨면서 새로 간 커피를 드립으로 내린다.

머그잔으로 받아 옆에 두고 홀짝거린다.

이제 두 시간은 이대로 가겠지.

레위기 5장을 다 쓸 수 있겠지.

다 쓰면 쉬어야겠네.

 

 

 

 

연두의 침몰 - 김성주

 

 

배가 침몰한다

 

핏방울 무늬의 흰 홑옷 걸쳐 입은 겨울손님이 오신다는 소문 파다하다

집집마다 손님맞이 불 지피느라 분주한 동백마을

그러거나 말거나 천조국의 새 하늘을 쪼개며 날아간다

 

연두가 침몰한다

극락전 투명 유리창에 부딪쳐 파닥거리는 날개

 

요금표, 九泉에서 동백마을까지 구천만 원

기억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배가 침몰한다

 

소문은 소문으로만 끝난 것은 아니었다

검은 강물 따라 흘러온 주인 잃은

동백꽃, 보자기를 풀어본다

 

붉은 꽃잎

노란 꽃가루

투명 젖병

빨대 하나

빨대를 입에 문 자궁

, 녹두 한 알

 

붉은 표적이 돼버린

집단 포격을 당하는

연두의 항해

 

안경 벗을 날은 언제인가, 당신?

 

 

 

 

작은 별 김옥순

 

 

누군가의

간절한 그리움이 녹아 만들어낸 까만 밤

사무친 눈물이 역류하여

반짝반짝 빛을 뿜어낸다

진한 어둠 속에 영롱하게

그리움이 쏟아져 내린다

위대한 걸작을 만든다

 

변변치 못한 작고 희미한

그러나

빛을 내려 안간힘을 내던 내 그리운 이의 별이다

자꾸만 감기는 두 눈

작대기로 받치듯 애쓰다

홀연히 하늘로 여행을 떠난 가엾은 별

! 그립다 무지 보고 싶다

별 하나의 동기간

 

 

                *애월문학회 간 애월문학2023년 통권 14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