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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3월호의 시(4)

by 김창집1 2024. 3. 29.

 

 

휘어진 LP

 

 

내 몸은 어머니의 판게아

 

봄여름가을겨울이 죽어나간 수억 년 골짜기들

깊이 패인 주름마다 휘돌아나간 울음을

낡을 대로 낡아 무디어진 바늘로

모든 소리 받아 적는다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몸통을

 

바늘이 출렁거린다

뒤틀린 트랙마다 비틀거리며

툭툭 숨넘어가던 저 불안정했던 맥박들을 뛰어넘어

판게아의 태동을 짚어간다 바다의 몸이 풀린다

 

그 억겁의 소리들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모든 울음을 재생 중이다

 

 

 

 

양지언덕에선 정순영

 

 

파란 하늘빛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더니

 

하얀 눈 덮인

양지언덕에선

 

부룩부룩

봄이 숙성하고 있네

 

땅의 장독에서

하늘빛 머금은 파릇파릇한 성령의 풀이 돋으면

 

사슴의 울음으로

새 생명의 해맑은 은혜를 찬송하리

 

 

 

 

다양한 당신 - 이인평

 

 

죽어 있어도 되는

섣달이었다

 

당신 하나를 꿈꾸려고

눈이 내리나 보려고

밤을 지탱하는 별빛 같은

불면으로

 

만화경 속의 당신을

내 마음에다

다양하게 오려 붙이는 동안엔

죽음도 달아났다

그러므로, 죽지 않았으므로

홀로 길을 잃은 듯

섣달은 길었다

 

겨울을 뚫고

복수초처럼 눈 속에서 빠져나와

마주 볼 생각이었지만

그토록 다양했던 당신은 어느새

그믐달같이 사라졌다

그래도 괜찮은 꿈이었다

 

 

 

 

생사는 순간이었다 - 조성례

 

 

실수의 끝은 너그럽지 않았다

 

물인 줄 알고

섬유탈취제를 뿌리서부터 잎까지 뿌렸다

 

검색 창에 떠 있는

설탕에 마늘에 쌀뜨물에

마음속으로는 미안해를 줄줄이 외면서 먹였다

어머니는

배앓이 하는 내게 쌀뜨물을 끓여서 먹였다는데

 

마지막 한 잎까지 시들어버리나 아슬했더니

어느 날 잎맥에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날짜를 짚어 가며 쌀뜨물을 먹였다

하얀 밥풀이 달리고

또 새로운 혹이 생겨났다

무엇일까?

 

날개를 달 준비를 시작했다

안타까운 내 마음을 행여 들었을까

꽃대 두 개를 밀어 올리고 있다

오늘은? 내일은?

 

파드닥거리는 날갯짓 소리를 기다리는 마음

오늘은 1미리 아님 2미리

꽃대의 길이를 눈 속으로 가늠한다

 

 

                      *월간 우리3월호(통권 제429)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