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장이지 시집 '편지의 시대'의 시(7)

by 김창집1 2024. 3. 30.

 

 

책갈피

    -kryplonlte

 

 

  매미 날개 멀리서 들리는 뇌성(雷聲) 잠자리 날개 붉어진 눈 부서지는 모든 것들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하늘 잃어버린 편지 영원한 대상 희미하게 부유하는 체취 시시각각 다른 어종이 걸리는 빛의 그물 항상 다른 색으로 반짝이는 지느러미날개포말…… 언어의 스핑크스, 인간적이면서 괴물적인 나의 모든 노래

 

 

 

 

언덕 위 관음

    -교환일기

 

 

  버스는 언덕을 넘고 있었다 너는 슬프다 했고 그 슬픔은 네 어깨에서 내 어깨로 전해졌다 그것이 환멸임을 알아서 나는 더 슬펐다 버스는 저녁의 속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버스 안은 투명하게 밝았다 나는 네 표정을 차마 볼 수 없었다 나는 언덕 위 관음(觀音)을 생각했다 관음은 세계를 구하려고 변신을 거듭한 게 아니야 관음의 얼굴 위로 또 다른 얼굴이, 얼굴들이 솟아나고 있었다 우리가 보지 못한 언덕 위 관음은 포옹을 기다리며 매번 다른 얼굴로 끝없이 돌아온다 관음이 처연한 모습으로 수면에서 흔들리는 달을 본다 너의 슬픔을 알면서 나는 너에게 가지 못하고

 

 

 

 

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 선생님께

 

 

  우리가 저마다 홀로 길을 떠나야 해서 밤마다 서러운 소리를 해도, 홀로라는 것은 언제나 둘을 부르는 것이어서 아주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길 위에는 만남이 있고 그 만남 끝에는 먼지와 검불, 재가 내려와 덮이는 온전한 시간이라고도 공간이라고도 할 수 없는 차원이 있고, 그 만남 끝에는 당신이라는 말이 있고 그 말은 아리고 쓰라린 것이기는 하지만…… 그 말에는 언제나 집이 있습니다 어느 날 지나온 집을 떠올리며 나라는 것은 없고 나라는 것은 단지 과정이구나, 나는 머물 집이 없구나 하는 생각에 북받치는 것이 있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뒤돌아보면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멀어지고 있는 집

 

---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 지성사, 1992

 

 

                     * 장이지 시집 편지의 시대(창비,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