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꽃나무 아래 서면 눈이 슬픈 사람아
이 봄날 마음 둔 것들 눈독들이다
눈멀면 꽃 지고 상처도 사라지는가
욕하지 마라, 산것들 물오른다고
죽을 줄 모르고 달려오는 저 바람
마음도 주기 전 날아가 버리고 마니
네게 주는 눈길 쌓이면 무덤 되리라
꽃은 피어 온 세상 기가 넘쳐나지만
허기진 가난이면 또 어떻겠느냐
윤이월 달 아래 벙그는 저 빈 자궁들
제발 죄 받을 일이라도 있어야겠다
취하지 않는 파도가 하늘에 닿아
아무래도 혼자서는 못 마시겠네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 옥매원(玉梅園)의 밤
수천수만 개의 꽃등을 단 매화나무가 날리는 香이 지어 놓은 그늘 아래 꽃잎 띄운 술잔에 열이레 둥근 달도 살그머니 내려와 꽃잎을 타고 앉아 술에 젖는데,
꽃을 감싸고 도는 달빛의 피리 소리에 봄밤이 짧아 꽃 속의 긴 머리 땋아 내린 노랑 저고리의 소녀가 꽃의 中心을 잡아,
매화를 만나 꽃잎을 안고 있는 술잔을 앞에 놓고 부르르부르르 진저리를 치고 있는
詩人들,
차마
잔盞을 들지도 못한 채
눈이 감겨 몸 벗어 집어던지고.
-「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 명자꽃
꿈은 별이 된다고 한다
너에게 가는 길은
별과 별 사이 꿈꾸는 길
오늘 밤엔 별이 뜨지 않는다
별이 뜬들 또 뭘 하겠는가
사랑이란
지상에 별 하나 다는 일이라고
별것 아닌 듯이
늘 해가 뜨고 달이 뜨던
환한 얼굴의
명자 고년 말은 했지만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었었지
밤이 오지 않는데 별이 뜰 것인가
잠이 오지 않는데 꿈이 올 것인가
-「황금감옥」(2008, 우리글)
♧ 왜 이리 세상이 환하게 슬픈 것이냐
- 찔레꽃
너를 보면 왜 눈부터 아픈 것이냐
흰 면사포 쓰고
고백성사하고 있는
청상과부 어머니, 까막과부 누이
윤이월 지나
춘삼월 보름이라고
소쩍새도 투명하게 밤을 밝히는데
왜 이리 세상이 환하게 슬픈 것이냐.
-『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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