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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순선 시집 '어느 토요일 오후'의 시(3)

by 김창집1 2024. 4. 29.

 

 

한 마리 새를 위하여

    -이영란 섬이 견디는 시간사진전을 보고

 

 

저녁노을을 날아간

이름 없는 한 마리 새를 위하여

작은 불빛 아스라이 밤을 밝히는 시간

쓸쓸한 밤하늘 별들을 바라보며

섬의 고요 속으로

별똥별 추억 하나 쏘아 올린다

 

수런거리는 나뭇잎들 사이에서

요람을 흔들며 한낮의 평화를 꿈꾸던

먹이를 찾아 아름다운 들판을 쏘다니던

고단한 날개를 접을 때

 

하늘은 고요를 덮으며

서서히 스러져 가는 노을 속으로

섬을 부른다

밤새 자장가를 불러주는

바다의 숨소리를 들으며

섬은

긴긴 밤을 지새운다

 

 

 

 

새끼 돌고래

    - 김만덕 나눔 그림전, 최민서의 꿈꾸는 섬을 보고

 

 

형제섬 앞바다에서

엄마 따라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꿈을 꾸는 새끼돌고래

엄마는 물의 파장으로 아기 마음을 읽어냅니다

바다 거울을 바라보는 아기 돌고래도

달빛 같은 엄마의 시선 위에

안개꽃 한 무더기 피워 올립니다

 

돌고래 재롱 앞에서는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속내를 보이지 않아도

어두운 마음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내립니다

형제섬 앞바다도 은근슬쩍

돌고래 따라

어깨춤을 춥니다

 

첫눈이 살포시 바다와

입맞춤 하는 날

새끼 돌고래는 더욱 힘차게 헤엄을 칩니다

하안 눈의 축복을 받으며

불끈불끈 파도 같은 근육으로

푸르게 푸르게 나아갑니다

 

 

 

 

향수

    - ‘여기, 한라산 송당김연숙 그림전을 보고

 

 

어느 날 꿈을 꾸었네

어머니 같은 한라산 앞에서

곶자왈마다 솟아오른 오름 사이를

어린 새 한 마리

아무 시름없이 날아다니다

길을 잃었네

 

눈 감으면 떠오르는

어머니 젖가슴 같은

그리운 고향

오름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그리움같이

, 부드러운 곡선 사이에서

몽유병 환자처럼

길을 잃고

꿈속을 해매네

 

 

 

 

별을 낚는 사람

    - ‘섬 에서 노는 법이영란 사진전을 보고

 

 

별빛이 반짝이는 황금빛 노을 속에서

낚시하는 사람

낚싯대에 올라온 피라미 한 마리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가마우지

멀리서 풍차같이 달려오는

갈매기 한 마리

 

어디선가 트럼펫 소리 들려온다

 

여름밤 명석 위로

무수히 쏟아져 내리던 별빛 아래

꿈을 꾸던 유년의 소년같이

황홀한 은행나무 숲에서

사랑을 줍던 소녀같이

 

황혼이 것든 저녁 바다에

꿈을 드리우고

별을 낚는 사람

추억을

사랑을

혼자서

잘도 낚는다

 

 

             -김순선 시집 어느 토요일 오후(한그루, 2024)에서

                                      - 사진 : 제주 해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