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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계간 '제주작가' 2024년 봄호의 시(2)

by 김창집1 2024. 4. 30.

*강요배 '동백꽃지다' 중 '한라산 자락 백성'

 

 

곡두 김진숙

 

 

오름 너머 오름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무자년 계절 속으로 마중 가는 사람들

그 뒤를 무턱대고 따라나선 날은

자꾸만 발을 헛디뎌 넘어지곤 한다

제주조릿대 서걱서걱 해치며 나아갈 때마다

다급히 어디선가 쫓기는 발소리에

놀란 노루처럼 내가 사라지기도 한다

 

증언의 억새밭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서어나무 사람주나무 침묵으로 결집한 나무들

제주 땅 어디서나 상처 없는 나무가 없다는데

죽음도 수습 못한 뉘 아비의 무덤을 찾다가

까마귀 울음조차 말라가는 서중천 물길을 따라

벼랑에서 쏘아대는 총성을 들은 것도 같다

 

사람이 살았다는 집 자리와 밭 자리마다

누군가를 겨누었던 녹슨 탄피와 탄두들

끝까지 놓지 않았던 부러진 숟가락 옆에

바위 같은 사내가 웅크리고 앉아있는지

깨진 사발, 깨진 항아리를 어루만지면

숯덩이처럼 불 지펴오는 저릿한 기억이 있어

옛사람 마중하는 마중물 사람들

그때 그 산을 마중하러 산을 또 오른다

 

오늘, 나는 무엇을 마중할 것인가

 

 

 

 

두 공간 - 김규중

    -10주기

 

  1.

  대안학교 아이들과 9주기를 맞아 세월호 수학여행 제주에서 우수영 목포 남항 팽목을 따라 40미터 바닥에서 인양된 세월호 선체 외부 철제 계단을 올라 다다른 4층 객실, 녹슨 철 구조물이 만드는 진공의 공간 순간 머릿속이 휘발되어 지금 서있는 철바닥이 갑자기 철벽이 되고 끝내 철천장이 된 모든 사실을 아이들이 설렘에서 공포로 구르고 물속으로 사라진 304개의 이야기를 부여잡고 숨을 조금이라도 나누려고 했던 것을 원인을 모른 채 죽어가는 것은 너무 외로워 물속에서도 팔을 놓지 못한 것을 녹슨 세월호 4층 객실은, 침묵이 온몸을 소름 돋게 하는

 

 

 

  2.

  43평화공원 행불인묘역 가기 전 오른편에 봉안관, 제주공항 집단 학살지 발굴 모습을 재현해놓은 1,2차 발굴에 387구의 유해를 그 가운데 139구가 가족 품으로 가고 아직도 아직도 어두운 공간으로 쑥 들어가면 결박되고 엮인 수백의 사람들 옆 사람의 마지막 기척 비릿한 피냄새 퍼져 구령으로 쓰러지고 꼬꾸라지고 뒤집히고 다리뼈가 갈비뼈 사이로 골반뼈 손가락뼈가 두개골 옆에 뒹굴어 60년이 되어 햇빛에 드러낸 마른 나뭇가지들 그대들 트럭에 실려 집행장으로 가면서 무슨 생각을 아직도 아직도 발굴되지 못한 수백의 주검이 자신의 죽음을 말하지 못하는

 

 

 

 

편력 - 김대용

 

 

1. 가슴에 박힌 감동은 만화 그리고 각인된 선율

    모래알 전우와 두통이 진식이 고향 눈

    아 라이파이 그 다음 단계는 단체 영화

    마리솔의 스페인.

2. 도시락 두 개들고 단정한 교복 목 칼라

    모두 수학의 정석에 땀 흘릴 때

    벌레 먹은 장미와 꿀단지에 빠진

    머무르고 싶은 순간들과 그해 가을 박계형

    책상 앞의 세계지도 푸른 다뉴브 강 이중창

    도서관을 담당했던 국어선생님이셨던 아버지

    책들은 모두 내 소유였다

3. 골목길에 나란히 서서 나직이 노래 부르던

    박하 분 냄새 나던 개천 다사이 오사무 미시마 유꾜

    트랜지스터라디오의 연속방송극 처음 들어 본

    스테레오로 들은 FM의 음질

    밤새 술 취한 그의 시는 모두가 아는 유행가 가사였다

4. 연탄가스나 복어탕을 먹고 온 가족이 숨지고

    용맹한 군바리들은 도시를 점령하고

    이 나라가 싫었다.

5. 가장 가벼운 배당을 지고 다녔다 다뉴브 강은 푸르지 않았고

    해질 무렵 멀리서 성당의 종소리가 울리면

    들판에서 일하던 젊은 부부가 경건하게 두 손 모으고 기도한다.

    어릴 때 이발 충으로 얽힌 머리를 자르는 이발소 벽에 걸려있던

    익숙한 그림 비싼 미술교과서에 나온 그림들

6. 김서린 목욕탕 거울에 어디선가 본 듯한 그 얼굴

    며칠 밤사이 자란 우울을 면도질하고

    낙타를 의지하여 사막을 건너며

    내 청춘은 끝났다

 

 

 

 

낡은 신발 - 김병택

 

 

낯선 마을의 골목길을 걷다가

지친 발길을 잠시 멈추고,

수명의 막바지에 이른

낡은 신발을 내려다본다

오름 오르는 중로에서 쉴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도

퇴색하고 찌그러진 신발이었다

 

발견은 예사로웠지만 그로

말미암아 꿰어 맞춘 기억들은

생각보다 예사롭지 않았다

 

내 발을 감싸고 있는 신발이

삶의 흔적을 꼼꼼히 기록한

개인사임은 확실해 보였다

아니면, 언젠가는 되돌아보거나

조금씩이라도 애써 해명해야 할

개인사의 실마리일 터였다

 

지금까지 신었던 낡은 신발을

쓰레기봉투에 버리는 순간

하나의 상념이 솟아올랐다

혹여, 신발과 함께 버려야 할

또 다른 기억들은 없을 것인가

 

 

                *계간 제주작가2024년 봄호(통권 8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