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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강동완 시집 '외로움은 광부의 삽처럼 번들거리네'(6)

by 김창집1 2024. 5. 2.

 

 

한 아이에게 던진 죽은 자장가

 

 

  처마 밑에 목을 맨 내 젖은 팬티 사이로 미친 까마귀 들이 얼어붙은 심장을 쪼아대고 붉게 터져버린 어린 아이의 푸른 눈동자 속에서 노란 유채꽃이 따뜻한 눈물 되어 알싸하게 터진다 어제 태어난 이이가 오늘 거품을 물고 죽고 미친 구름들은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엄마는 죽은 자장가를 풀숲 구덩이 속에 묻는다

 

 새 한 마리 풀숲 속에 날개를 펼치고 알을 품고 있다

 알은 어디서 왔을까 알은 거칠게 두드려도 깨지지 않는다

 알은 조그만 빛의 숨죽인 흔들림으로 인에서부터 깨고 나오는 것이다

 

 알 속에서 죽은 자장가가 들렸다

 

 구슬치기를 하던 한 아이가 빛 속에서 현기증을 일으키며 쓰러지면

 다른 한 아이가 태양의 목을 조르고 아이는 눈이 멀어진다

 죽어가는 태양은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마지막 찬송가를 부른다

 눈먼 비둘기들이 날개를 뜯으며 창문에 부리를 박고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사랑했던 그녀의 목덜미는 사슴 같았고 시궁창처럼 익숙했고 엄마의 따뜻한 말처럼 안전했다 레밍 쥐들이 무리를 이루어벼룩처럼 절벽 같은 내 몸을 기어오른다 목덜미에 새겨진 어둠의 시간들이 수류탄처럼 터진다 죽은 쥐의 냄새는 피에 젖은 악령의 보랏빛 블라우스 냄새 같았다

 

 죽은 자장가가 태풍이 지나간 계곡 사이로

 뿌리째 뽑혀 흘러가는 나무처럼 뒹굴고

 

 아이는 알을 깨고 태양을 삼킬 수 있을까

 한 이이가 다른 한 아이에게 손에 쥔 빛을 던진다

 

 

 

 

나는 그 속에서 계속 자라나고 있는 중이다

 

 

 내가 사는 집에는 벽장이 열 개가 있었다

 손잡이에 다섯 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혀진 벽장은 거대한 동굴처럼 한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벽장 속에 비가 내리면 나는 가장 따뜻한 외투를 걸치고 벽장 속에 쇼윈도의 마네킹처럼 서 있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가끔 나의 몸을 만지고 히죽히죽 쓴웃음을 지으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서둘러 사라졌다 벽장 속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명품가방과 철지난 옷들이 가득했다 가방 속에는 박쥐들이 살았고 나는 박쥐들 몰래 가방 속에 알을 낳았다 가방 속에서 쇼팽의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여전히 계속 태어나고 있는 중이다

 

 새벽 12시가 되면 보라색 블라우스를 입은 소녀들이 피리를 불며 벽장 속으로 들어갔다 벽장 속으로 들어간 소녀들은 다음날 안개가 되어 벽장 속에서 나왔다 가끔 벽장 속에서 나온 거인들이 잠들어 있는 내 심장을 훔쳐갔다 벽장은 쓸쓸히 슬프기도 했다 마을에는 아이들이 점점 더 없어졌다

 

 벽장 속에는 안개가 가득 찼고 여전히 비바람이 불고 있었다 벽장 속에서 재깍재깍 시계 소리가 들려왔다 시계 소리는 점점 더 커지며 천등소리 같았다 시계 소리에는 이상하게 해바라기 향기가 났다 벽장 속에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 꽃을 기웠지만 결국 벽장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나는 밤이 되면 마을 집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귀를 자르고 잘린 귀를 과자처럼 벽장 속에 숨겨 놓았다 귀들은 쿵쿵 마룻바닥을 돌아다니며 먼지들을 외투처럼 걸치고 진혼가를 불렀다 벽장 속에 잘린 귀들이 가득차면 벽장을 불태웠다 벽장이 다 타버리면 나는 아빠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벽장을 만들어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아빠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목공이었다 아빠에게도 벽장 속을 보여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어둠이 내리면 벽장은 내 방에서 떨어져 나와 저녁 하늘을 날아다녔다 호랑나비들도 벽장과 함께 날았다 나비들은 따뜻한 달빛을 모았다 벽장 속에 달빛이 가득차면 귀 없는 아이들이 태어났다 아이들은 나비로 변해 살포시 나뭇잎 위에 내려앉았다 길거리에 눈처럼 벽장들이 굴러다니기도 했다 그녀의 차가운 잠속에 굴러다니는 아름다운 귀들처럼, 나는 벽장을 씹어 삼키고 벽장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나오지 않았다

벽장 속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도마뱀의 결혼식

 

 

 태양이 구름 중절모를 눌러 쓰고 안개 넥타이를 하고 신사처럼 정중하게 뜨거운 가래침을 뱉었다 죽은 태아들이 어둠처럼 웅크려 있는 안개였다

 눈알 하나 없는 죽은 참새가 조카의 길고 꿈틀거리는 영혼을 콕 찍어

 안개 속으로 사라지다

 날아가며 질펀하게 내 이마에 똥을 갈기고 달아났다

 그 똥냄새가 사랑했던 여인의 향수 냄새 같았다

 가래침을 맞은 들꽃들의 투명한 외투는 젖고 들꽃의 꽃봉오리에서

 벌거벗은 큐피드들이 태어났다

 식용으로 팔려가는 우울한 노예 개들이 안개의 숲을 지나니

 불타는 검은 재가 되었다

 검은 재들은 그 곁을 지나는 어느 노파의 허약한 그림자 위로 털썩 쓰러졌다

 노파는 타이어를 끄는 씨름선수처럼 그림자를 끌고 언덕을 넘어야 했다

 그림자는 누군가 만들어 놓은 슬픈 얼굴을 한 밀랍 인형들이야

 구멍 속에서 도마뱀들이 나와 밀랍 인형을 뜯어 먹었다

 사람들은 벌거벗은 채로 거리로 뛰쳐나오며 유레카라고 외졌다

 젖은 신문지처럼 날지 못하고 그래서 바람은 신문지를 등에 업고

 땅바닥을 기어 다니고 미쳐서 결국 잠들었네 미쳐서 영원히 깨어나지도 못하네

 도마뱀들이 담벼락에서 기어 나와 노파의 그림자를 질질 끌며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어린 조카가 고추를 내밀고 휘저으며 사라진 구멍 속으로

 투명한 꿈들을 쏟아냈다

 결혼식을 성대히 치르던 도마뱀들이 소리를 지르며 구멍 속에서 뛰쳐나왔다

 턱시도를 한 도마뱀과 붉은 드레스를 입은 도마뱀의 몸에서

 오줌냄새에 절여진 웃음들이 피어올랐다

 나는 햇빛에 타버린 검은 슬픔을 음미하는 것처럼 도마뱀 하나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포도알처럼 툭툭 터지는 것이 기분이 더러웠다

 도마뱀을 뜨거운 다리미로 반듯하게 밀고 싶었다

 

 하루가 지나자 내 엉덩이에서 도마뱀의 꼬리가 자라났다 꼬리를 잘라도 다음날에 다시 자라났다 내 눈알은 퀭하게 튀어 나왔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알들은 땅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천정에 붙어 비명을 지르고 온몸이 뜨거운 울음소리다 안약을 넣어도 눈알들은 푸른 구슬처럼 어디론가 굴러가네 이 찬란한 거리에서 저 뜨거운 어둠의 거리 속으로 쓰러지네 새들은 내 눈동자 속에 부리를 박고 새들이 눈동자를 다 파먹기를 바랐다 내 눈이 새의 눈이 되어 내 영혼이 태양 속에서 불타오르기를 아득한 구명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곰팡이 핀 방안 문틈 사이로 꼬리 없는 도마뱀들이 수없이 들락거리며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방안의 커다란 코모도도마뱀 한 마리 혀를 낼름거리며

 불타오르는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강동완 시집 외로움은 광부의 삽처럼 번들거리네(시와세계,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