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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오승철 유고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의 시(2)

by 김창집1 2024. 6. 3.

 

 

비양도 항아리

 

 

가을 햇살에 잘 익은 그 할머니 그 항아리

왜 내가 갈 때마다 갖고 가라 했을까

그 옛날 황토돛배가 팔고 갔단 그 항아리

 

황포돛배 흘러가듯 어디로 다 흘렀을까

팔자 센 그 항아리 숨비소리 담가 놓고

어느 땅 그 역마살을 그리워나 했을라

 

 


 

멩게 차

 

 

서귀포 가는 길에 쌍계암에 들렀습니다

그냥 빌고 싶어 약속 없이 들렀습니다

싸락눈 몇 방울 흘린 멩게 차도 받아듭니다

 

사오월 이 들녘에 멩게 꽃 안 핀다면

그 누가 거린사슴에 기도 한번 올려 줄까요

빠알간 열매에 대고 고백 한번 해 줄까요

 

 


 
 

꿩꿩꿩

 

 

꿩아 너는 왜 우니

나도 그걸 모르겠다

 

내 외로움 내 안다면

덜 서럽지 않겠느냐

 

온 섬이

날 가둬놓고

울어줘도 모르겠다

 

 


 

꿩아, 그만 길을 비켜라

 

 

우리 아버지 마지막 길에

 

무슨 시비 거는 거니

 

인생사 굽이굽이

 

세상 빚 좀 남았다고?

 

이눔아 길을 좀 비켜라

 

털릴 만큼 털렸다

 

 


 

삥이 뽑으러 가게

 

 

봄 들판에

미삭헌 삥이

뽑으러 가게

 

삥이는

사랑처럼

먹을수록 배고픈 것

 

성성한

억새에

손 베일지라도

어욱 삥이 뽑으러 가게

 

 

                   *오승철 유고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다층,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