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빌락*
팔월엔 불어터진 생각이 둥둥 뜬다
헛디딘 순간마다 납작하게 붙어있는 군부를 떼어내다, 소금기 많은 과거가 하얗게 내 몸에 피어난다 뜨거운 태양의 역광으로 외로움도 씻겨내고 파도에 묵은 때를 벗기던 아홉 살의 여름, 그 여름을 품고 있던 아이들은 바다를 절부암에 가둬놓고 두 눈을 감은 채 연신 자맥질로 같은 숨만 호흡하며 누가 오래 버티나 내기하다, 불어터진 하루를 품고 귀가하던 그때처럼
바다에 가닿은 영혼, 도대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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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빌락 : ‘아이들이 바다에서 자맥질하며 누가 오래 참는가를 견주는 놀이’의 제주어
** 도대불 : 제주에만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옛 등대
♧ 섬메섬메*
중심을 잡으라고 섬메섬메 어르네
세상도 내 마음도 게걸음 비틀비틀
그대로 꼬꾸라져서 일어나지 못하면
어머니 어르는 노래, 나도 따라 어르네
넘어지면 섬메섬메 잘 서라고 섬메섬메
온종일 살길 헤매어도 허기지던 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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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메섬메 : ‘어린애에게 손발을 놀리거나 서도록 하면서 어르는 소리’의 제주어
♧ 왈락*
습도에 질척이고 가쁜 숨 차오르면
살아온 생애가 늘 그렇듯 애써 태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갈 때가 언제인지 모를 뿐, 우리는 5개월 길면 일년을 버틸 것이라 생각했다 병원 안은 건조했다 마른 수건 빨아서 옷걸이에 걸 때마다 내 심한 비염은 콧물로 훌쩍거렸다 어쩌다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리려 하면 어머니는 “아이고 무사 영 날이 왈락 더우니?**” 슬리퍼를 질질 끌고 걸어가서는 창문을 열어놓곤 했다 그래 아직은 초겨울이잖아 첫눈도 안 왔는데 어머니가 눈치 채지 못했으니 모두들 목구멍에다 잔뜩 울음을 올려놓고도 내뱉지는 않았다 아니다 어쩌면 자식들을 위해 애써 태연한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날도 어머니는 왈락 덥다며 창문을 열어놓는데, 그만 그 틈새로
싸락눈, 눈물 반 섞여 왈락허게***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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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왈락 : ‘열이 갑자기 솟는 꼴’의 제주어
** “아이고. 무사 영 날이 왈락 더우니?” : “왜 이리 날이 덥니?”라는 뜻
*** 왈락허다 : ‘격한 감정이 솟구치거나 어떠한 생각이나 느낌이 한꺼번에 밀려 넘쳐 차오르다’의 제주어
♧ 아래아
손놀리곡 몸놀령 오몽해사 살아진다
어르고 달래면서 곧은 길만 가게 하던
이제 와 귀 기울이니 정겨웠던 말이네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의 그 어머니
목숨 긴 삶의 문장 풍상을 건너면서
내뱉지 못한 말들이 동백으로 물드네
이 말이 저 말 같고 저 말이 이 말 같아
난해한 아래아를 표음문자 해석하듯
외래어 난무한 제상에, 살아있어 고맙네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 (동학시인선 122, 202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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