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양도 항아리
가을 햇살에 잘 익은 그 할머니 그 항아리
왜 내가 갈 때마다 갖고 가라 했을까
그 옛날 황토돛배가 팔고 갔단 그 항아리
황포돛배 흘러가듯 어디로 다 흘렀을까
팔자 센 그 항아리 숨비소리 담가 놓고
어느 땅 그 역마살을 그리워나 했을라
♧ 멩게 차
서귀포 가는 길에 쌍계암에 들렀습니다
그냥 빌고 싶어 약속 없이 들렀습니다
싸락눈 몇 방울 흘린 멩게 차도 받아듭니다
사오월 이 들녘에 멩게 꽃 안 핀다면
그 누가 거린사슴에 기도 한번 올려 줄까요
빠알간 열매에 대고 고백 한번 해 줄까요
♧ 꿩꿩꿩
꿩아 너는 왜 우니
나도 그걸 모르겠다
내 외로움 내 안다면
덜 서럽지 않겠느냐
온 섬이
날 가둬놓고
울어줘도 모르겠다
♧ 꿩아, 그만 길을 비켜라
우리 아버지 마지막 길에
무슨 시비 거는 거니
인생사 굽이굽이
세상 빚 좀 남았다고?
이눔아 길을 좀 비켜라
털릴 만큼 털렸다
♧ 삥이 뽑으러 가게
봄 들판에
미삭헌 삥이
뽑으러 가게
삥이는
사랑처럼
먹을수록 배고픈 것
성성한
억새에
손 베일지라도
어욱 삥이 뽑으러 가게
*오승철 유고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 (다층, 2024)에서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2) (0) | 2024.06.05 |
---|---|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의 시(2) (1) | 2024.06.04 |
김순선 시집 '어느 토요일 오후'의 시(8) (1) | 2024.06.02 |
임채성 시조집 '메께라'의 시조(7) (0) | 2024.06.01 |
월간 '우리詩' 5월호의 시(6) (0) | 2024.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