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곱앙갈락*
곱앙갈락, 부르면 눈이 펑펑 내렸다
식게떡 먹고 싶어
흙을 탕탕 두드리면
김 모락모락
침떡 한 빗 나왔다
곱앙갈락,
어디로 숨어가라 하였을까
4․3에 울던 아이
달래주던 동백도
흰눈이
펑펑 내리면
합창하던 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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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곱앙갈락 : 아이들이 제사 치르는 흉내로 흙장난을 하며 부르는 노랫말의 구절. ‘숨어가기’의 제주어.
♧ 물마중*
찢어진 고무신이 오늘의 기분이에요
생의 출구를 찾다가 생의 입구가 되어버렸죠 물마중 갈 때는 꼭 어린 리어카를 끌고 가요 모서리가 모서리를 밀어낼 때 방향은 잃어버린 지 오래, 뒹굴고 구겨지는 농롯길에 덜커덩덜커덩 혼자서 끌고 가는 건 정말 위태로웠죠 바다가 거세지길 바랐어요 함께 놀아줄 친구도 없이 바다에 내몰려 버려졌기에 습관처럼 달리고 달리는 동안 냉이들이 별처럼 꽃을 피우는 밭둑에서 누군가의 희망은 누군가의 절망이 되어갔고, 봄은 서툰 호멩이로 미역을 베던 나에게 말을
걸었죠
어머니, 물에 들지 마세요
물마중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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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마중 : 물질을 하느라 지친 해녀들을 위해, 가족이나 혹은 먼저 물에서 나온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이나 그물망을 끌어내며 도와주는 것의 뜻을 지닌 제주어.
♧ 밥 먹어사?
‘밥’하고 입을 열자
목젖이 울컥하네
어쩌다 전화 걸면
밥 먹어사?* 묻던 말씀
밥이란 말만큼이나
먹먹한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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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어사? : ‘밥 먹었니?’의 제주어.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 (동학시인선 122, 202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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