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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오승철 유고 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의 시조(3)

by 김창집1 2024. 6. 12.

 

 

성산포 못 미쳐서

 

 

성산포 못 미쳐서 돌아설 걸 그랬다

일출봉 근처에 와도 뜨는 해를 못 보고

조간대 밥벌이하는 게들만 보고 왔다

 

게야 게야 달랑게야 너도 집이 있는 거니?

친구 따라 강남 가듯 허름한 집 사놨는데

오 년이 그냥 흘러도 시 한 편을 안 주네

 

성산포 어느 변두리 외등으로 나앉은 마을

문턱을 넘나드는 파도 소리 산새 소리

저기 저 삶 속에 나는 끼지 말 걸 그랬다

 

 


 

청미래 꽃만 피어도

 

 

수많은 암자 중에

왜 이곳으로만 이끌릴까

 

불사는 못 이뤘지만

청미래 꽃만 피어도

 

쌍계암 목불을 안고

한없이 울고파라

 

 


 

문득 만난 마을

 

 

간혹 산에서 만나는 팻말 잃어버린 마을

여기는 어디이고 이 우물은 누가 마셨을까

소개령 흩어진 사연 저 오름은 알고 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 명도 안 돌아온다

칠십 년 피고 진 벚꽃 그리움도 연좌제일까

어느 집 깨진 거울 조각이 나를 빤히 보는 것 같다

 

고려인들이 그랬듯 몇 사람만 모여들면

시베리아도 화산도도 일궈내질 않았던가

봄 들판 포크레인 끌고 더운 흙을 파러 가자

 

 


 

바람까마귀

 

 

이름 없는 까마귀 떼로 우는 까마귀떼

아무리 철새라지만 제 분수는 알아야지

남의 땅 한 구석에서 식량 전쟁 벌이나

 

어쩌다 시베리아와 제주 섬이 인연 맺었나

이 밭 저 밭 옮길 때마다 저절로 밭갈이 되고

까마귀 네댓 마리면 병아리도 채간다

 

열차는 밤 12시 시베리아를 달린다

한라산 소주보다 두 배 더 독한 보드카 주

북촌 땅 까마귀 저도 몇 잔술에 취했을까

 

 

 

              *오승철 유고 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다층,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