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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6월호의 시(2)

by 김창집1 2024. 6. 13.

 

 

 

으아리 망울은 아직 먼 길에 있었다 - 여연

 

 

빨간 벽돌 이층집은

호린 오후를 지붕에 널어놓고

안주인은 적요에 칩거 중

 

하안 꽃 피우는 으아리

보라 꽃 피우는 으아리

두 종을 데크 아래 심으며

 

언니 곧 꽃 필 거야 꽃 피면 보러 와

 

4월이었다 한도 설움도 많은 계절

진도 앞바다에 매달린 리본의 물결도

주기를 앞두고 눈물을 준비하던

 

한 번도 본 적 없는 반듯한 미간은

하야니 더 비수다

사람 사이 싹둑 가위질하던 솜씨로

안녕을 잘랐다 끈 끊어졌다

너와 나의 인연 줄은 여기까지라고

 

가는 게 세월만이 아니라며

돌아선 걸음걸음 불어오는 건

 

봄바람 아니다

겨울바람이다

남은 자 머리 위로 흩날리는 건

벚꽃 아니다

얼음꽃이다

 

으아리는 아직 엄지만 한 망울도 내밀지 못했고

흰 꽃 자주 꽃은 더욱 먼 길에 있지만

유월이면 온통 으아리 아리겠다

 

 


 

나비

 

 

잠견*의 벽을 깬

선새벽은 신선하다

인력 시장 앞

집시 기질의 사람들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차가운 야생, 적멸의 시간

주머니는 채워지지 않았고

봄은 큰 걸음으로 다가왔다

날품에 길들여진 사람들

품삯을 흥정하고 있다.

 

---

* 누에가 실을 토하여 제 몸을 싸서 만든 집.

 

 


 

내가 없어도 - 윤태근

 

광활하고 오묘한 자연 속에

점 하나만도 못한 존재라고요?

 

내가 없어도 태양은 빛나고

꽃과 별들은 웃는다고요?

 

시장 안의 활기는 여전하고

출퇴근 전철도 붐빌 거라고요?

 

그런데 그런데

태양 꽃 별 시장 전철 모두

내가 없다면 있는 걸까요?

 

 


 

장미에게 이상호

 

 

말하자면 붉고 노란 아름다운 것들이

가끔은 가랑비 설킨 설움이어도 좋으리

말들이 자글거리는 입안이라면 더욱 좋으리

 

문창살에 새겨져서 창밖으로 흔들리는

이 밤만은 단둘이가 아니라도 좋으리

질기게 기대어 서서 눈물 나게 울어도 좋으리

 

선잠 깬 새벽 거리에 가시 하나 품고 서서

상처 하나 길게 내놓고 미움 끝 뒤에라도

기억이 사라지지 않게 가지 하나 내밀어 다오

 

 

                  * 월간 우리6월호(통권 제43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