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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강동완 시집 '외로움은 광부의 삽처럼 번들거리네'(10)

by 김창집1 2024. 6. 14.

 

따뜻한 별

 

 

  너내 그거 아니 난 다른 별에서 왔어 가시오페아자리 세 번째 별에서 왔지 이 별은 죽은 사람들의 영혼으로 만들어진 별이야 너희 별에서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이 별로 온단다 아름답고 빛보다 빠른 운석을 타고 왔지 우리 별에는 거대한 폭포가 있고 공룡들의 살아 폭포 여에는 짙은 꽃항기 나는 백합 꽃밭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꽃 속에는 팅커벨이라는 아주 자그만 요정이 살지 나에게는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이주 강력한 힘이 있어 시들어버린 꽃을 만지면 꽃이 짙은 향기를 뿜으며 다시 아름답게 피어나고 가느다란 줄기를 쓰다듬으면 노란 열매가 맺혀지 너희 별에 죽음에 너무 기울어진 가여운 영혼들의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할 거야

 

  이건 나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처가 있어 지구의 따뜻한 햇살과 깨끗한 꿈을 마시면 상처가 나아진대 팅거벨 요정이 말해줬어 그리고 난 너희 별 대평양 깊은 해저 속에 사는 인어 공주를 만나러 왔어 난 어릴 적부터 인어공주를 사랑했거든 이번에 어떻게든 인어공주의 마음을 얻어갈 거야 아, 참 내가 지구에 올 때 우리 별의 성물인 마술 나무를 가져 왔거든 이 마술 나무를 사하라 사막에 심을 거야 그러면 사막이 깊고 신선한 공기가 흐르는 아름다운 숲으로 될 거야 나무 아래 짙은 그늘이 만들어지면 너희들의 지친 영혼을 그늘 속에 잠시 쉬게 하렴

 

  어쨌든 우리 별과 너희들의 지구가 좀 더 가까워 졌으면 해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한 손이 되어주는 이 거대하고 차가운 우주 속에서 서로의 불만한 눈빛이 하나가 되어 또 다른 태양으로 다시 태어나길

 

 



사과를 깎으며

 

 

  사과를 깎으면 눈물이 났다

  어머니는 화롯불 옆에서 마르지 않는 투명한 눈물을 깎다가 손을 베인다 차가운 침묵이 입속에서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죽은 새들은 연탄구멍 속으로 알콜에 취한 아버지의 절망을 실어 날랐다 연탄구멍 속에서 따뜻하게 데워진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린 아이들은 목이 말라 입을 벌리고 추운 겨울날 허공에 날아다니는 오리털 같은 따뜻한 노래를 머리끝까지 덮었다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죽음 앞에서 흐느꼈다 내 책가방 속에 얼어붙은 무 같은 엄마를 구겨 넣고 학교로 마른 나뭇잎처럼 날아갔다 그해 겨울은 앙상한 맨발이었지만 털양말처럼 따뜻했고 안전했다

 

  내 슬픈 추억들은 몸속에 그림자처럼 달라붙는 톳 무덤처럼 미끌미끌했지만 슬픔의 무게로 아직도 마음 속 바람 연은 허공 속에서 나부끼고 있다

 

  내 위험한 영혼 속에서 흉터 기득한 사과나무가 어느 요절한 천재 작곡가의 악보처럼 부풀어올랐다 그 쓸쓸한 음표들이 날개 달린 사과 같고 외로운 사내의 꿈틀거리는 심장 같네 내 한쪽으로 기울어진 기억들을 마침내 본 어머니는 우울하고 위독했다 난 그 차가운 기억들을 떠올리며 쓸쓸하고 따뜻한 노래를 만들고 귀가 어두운 어머니에게 들려주네 어머니는 들을 순 없지만 오늘도 사과를 깎으며 눈물을 홀리시네요 눈물을 흘리시며 따뜻한 노래 중얼거리시네요

  나의 입속에서 은밀한 사과들이 쏟아져 그리운 안개처럼 세상 속으로 상큼하게 뛰어드네요

 

  다시 사과를 깎으며

  빛 속에서 얼어붙은 노래들은 녹아내리네요

  따뜻한 눈물처럼

 

 

 

 

 코카콜라 향기 나는 하루

 

 

  코카콜라자판기에 우리들의 희망 같은 동전 하나 넣어 우리들의 삶처럼 세상 밖으로 툭 튀어나온 버튼을 누르면 목이 말라 등뼈가 굳은 우리들의 하루에 빨간 코카콜라 컵 하나 떨어진다. 떨어진 컵은 하얗게 도배된 허전함 위에서 하루 종일 자리를 옮기며 지우개로 밀어도 지워지지 않을 꿈같은 길을 만들어야 했던 내 작은 수성 펜보다 작게 보인다. 및 개의 물줄기가 컵 속의 하안 바닥을 깊게 하려는 듯 세차게 쏟아질 때면 깊지 않아 흔들거렸던 우리들의 하루가 깊이 있어 보였다. 자판기보다 작은 여자가 조급함 때문에 쉽게 채워지지 않는 하루의 삶을 지구 들여다본다. 잘 맞지 않는 하이힐 위에서 곡예사같이 연신 허리를 굽혔다 펴며 컵이 있는 공간 출렁거리는 코카콜라 속으로 출렁거리는 머리카락을 갖다 댔다. 그 뒤로 늘어날 대로 늘어난 시간의 공간 사이 담배 연기 끝에 젖은 목젖까지 함께 날려 보내던 청년들과 석고보드로 채워진 천정을 바라보며 저 천정 위에도 하늘이 있을까 없을까 고민하던 한 소년이 코카콜라를 가끔 쏟아버리기는 했지만 컵 속에 담겨 나오는 코카콜라는 항상 눈이 부셨다. 9월의 상수리나무 잎을 흔드는 희망처럼 향기로웠다. 검붉은 모습을 한 저것들은 어째서 이렇게 향기로울 수 있을까. 컵 속으로 쏟아지는 코카콜라는 컵 밖으로 넘치는 법이 없다. 부족해서 가득 채우려는 적분공식 같은 우리들의 삶은 항상 넘치거나 부족해서 비틀거린다. 넘치지 않는 코카콜라 향기는 아름답다. 컵 속에서 기포들이 떠올라 표면 위에 둥글게 맺혔다 터진다. 터지는 기포들의 작은 자리에서 코카콜라 향기가 짙게 드리웠다. 그것들이 내 몸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희망처럼 튀어 올라 둥글게 맺히려는 기포들 터지는 소리가 조금씩 크게 들린다. 사람들 몸에서 코카콜라 향기가 났다.

 

 

 

             *강동완 시집 외로움은 광부의 삽처럼 번들거리네(시와세계,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