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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의 시(5)

by 김창집1 2024. 6. 24.

 

 

처서

 

 

참더웠다

 

소슬바람 다가서려다

때가 아닌 듯

물러설 줄 모르는 발악은

바닥을 쓴다

 

모처럼

귀뚜리 요란하다

 

마당에도

별도에도

 

정화되는 새벽은

나를 깨운다

 

계절은 이렇게 살아

25도 차로 걸어오는 사봉 길

 

다시

못 올 것 같던 인생길에

나를 반추한다

 

 


 

마지막 탐방길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꾸역꾸역 등짐 나르던 때 있었다

 

아버지 상엿소리 듣던 어린 날

 

등심은 땀에서 눈물샘으로 후볐다

양 날개 지탱하기 위한 등뼈들이

짊어진 조코고리* 무게에 땅심은

역자를 만든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엄마오리 새끼 오리

뒤뚱뒤뚱 열 걸음 다섯 걸음

어미는 새끼 바라보며 뒤에서 관찰하는데

도저히 견딜 수 없던 인내는 양심을 팔아

아저씨 등짐 같이 실어다 주세요하던

어린것

 

여름이면 뙤약볕에서 검질 매고

감저 심고

조 심어 나르던 그 시절 두 마지기 밧,**

지금

내 나이 석양 물결에 같이 사라져 가는

아버지 탁주 만들던 좁쌀,

어머니 손으로 빗던 오메기 숨 고르던

고팡에서 술지게미 익는 소리가

 

어린 맛 깨우던

아버지 글 읽는 소리가

아득히 멀어져 가는 것에 대한

 

---

* 조 이삭.

** .

 

 


 

영혼의 별

 

 

튀르키예 밤하늘

쏟아지는 별들 위로

우주별 하나 보내고

여섯은 가네

 

내전만큼이나 할 말은

많아도 할 말을 잃게 하는

우주의 법칙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말은

 

조물주는 를 키운다,

어머니의 강인력

 

 


 

가위손

 

 

소싯적엔 어머니가 단발을 해주셨는데요

말 그대로 사발 머리요

 

상상되나요

 

화롯불에 젓가락 달구어

파마머리 뱅뱅 말던 모습

 

생각나요

 

그래도요

아이고 저 집 딸들은 다 고와 이

그랬다는데

 

어머니만큼일 때요

딸 아들 신랑 머리까지 했거든요

복고풍 머리요

 

상상되시지요

 

애들 머리는 곱다면서도

아들 머리는 요샛말로 거 뭐라 했는데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한그루,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