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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5)

by 김창집1 2024. 6. 25.

 

 

ᄆᆞᆷ*

 

 

바닷속 10미터가 그녀의 길이었다

바다의 시간들은 돌고 돌아 흐르고

줄타기 곡예 하듯이 헛물켠 몸 하나로

 

어머닌 ᄆᆞᆷ이었다

갈조류 ᄆᆞᆷ이었다

숨 가쁜 깊이에서 회이로 베어내면

볶아낸 콩 한 줌으로 버무려진 ᄆᆞᆷ이었다

 

꽃피는 일은 없어 ᄆᆞᆷ을 말아 걸었네

차귀도 서쪽 마다 가젱이 물살 가르며

끝까지 움켜쥔 것은 자식 같은 실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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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ᄆᆞᆷ : ‘모자반의 제주어.

 

 


 

어머니는 걸었네

 

 

배운 게 하나 없어 놀 줄도 몰랐었지

책 읽기 영화 보기 남의 나라 얘기지

한 가지 소일거리는 천천하게 걷는 일

 

돈 한 푼 아끼려고 걷는가도 싶었고

당신의 건강 위해 걷는 줄 알았는데

집 밖을 나와 결으면 오장이 시원타 했네

 

하기야, 스트레스 풀 곳도 있어야지

유모차 조심조심 단단히 움켜쥐고

한 인생 풀어 놓으며 어머니는 결었네

 

 


 

호오이!

 

 

간절한 소리들만 가는 곳 있으리라

봄부터 겨울까지 나가며 들어오며

캄캄한 청력에서도 파도처럼 일어서는

 

그 소리 이해하려면 바다를 알아야 해

돌고래 몰려드니 소리 난다. 라고 하며

그렇게 가벼움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열다섯 초용*부터 어머니가 냈던 소리

몇십 년 지나도록 바깥채 테왁에 남아

어떻든 살아야 한다. 간절하게 호오이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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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용 : ‘첫 바닷물질의 제주어.

 

 

 

    *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동학시인선 122,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