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장영춘 시집 '달그락, 봄'의 시(2)

by 김창집1 2024. 6. 27.

 

해후

 

 

너를 보낸 시간 앞에 늘 목이 마르다

허기진 기억들이 봄이면 꿈틀꿈틀

하늘로 올려본 날이

몇 날 며칠이던가

 

그리움의 끝자리엔 회색빛만 감돌다

혹독한 겨울 지나 붓끝을 세우다 말고

산목련 꽃 문을 열며 그렇게 너는 왔다

 

사나흘 마주 보다, 막막하고 막막한 채

아무 말 못하고 선 네 몸짓을 보았다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뭉클하고 뭉클해진

 

 

  
 

산 목련

 

 

겨울의 꽃눈을 달고 그녀는 내게로 왔다

 

오랜 불임의 시간 탯줄을 자르고

 

이제 막 배냇저고리 가지 끝에 걸렸다

 

 


 

그 여름

 

 

있는 듯 없는 듯이 없이 살자 그랬지

 

세상 밖 소리조차 자물쇠를 채워놓고

 

뜨겁게 달궈진 방 내가 나를 가둔다

 

그렇게 사흘 나흘, 그 여름 다가도록

 

꽃 대궁만 올리다 상사화 꽃 진 자리

 

연북로 귀퉁이 돌아 내가 거기 있었다

 

 


 

가을을 전송하다

 

 

얼마만큼 더 가야 그곳에 가 닿을까

 

지다 만 쑥부쟁이 그늘 반쯤 기대어

 

십일월 하늬바람에 길을 트는 따라비오름

 

견딜 만큼 견디리라, 뜨겁던 다짐마저

 

억새꽃 들판에서 산산이 부서져 내려

 

마침내 백기를 들고 그 앞에 내가 섰다

 

 

                   *장영춘 시집 달그락, (한그루,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