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서
참더웠다
소슬바람 다가서려다
때가 아닌 듯
물러설 줄 모르는 발악은
바닥을 쓴다
모처럼
귀뚜리 요란하다
마당에도
별도에도
정화되는 새벽은
나를 깨운다
계절은 이렇게 살아
25도 차로 걸어오는 사봉 길
다시
못 올 것 같던 인생길에
나를 반추한다
♧ 마지막 탐방길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꾸역꾸역 등짐 나르던 때 있었다
아버지 상엿소리 듣던 어린 날
등심은 땀에서 눈물샘으로 후볐다
양 날개 지탱하기 위한 등뼈들이
짊어진 조코고리* 무게에 땅심은
ㄱ역자를 만든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엄마오리 새끼 오리
뒤뚱뒤뚱 열 걸음 다섯 걸음
어미는 새끼 바라보며 뒤에서 관찰하는데
도저히 견딜 수 없던 인내는 양심을 팔아
“아저씨 등짐 같이 실어다 주세요” 하던
어린것
여름이면 뙤약볕에서 검질 매고
감저 심고
조 심어 나르던 그 시절 두 마지기 밧,**
지금
내 나이 석양 물결에 같이 사라져 가는
아버지 탁주 만들던 좁쌀,
어머니 손으로 빗던 오메기 숨 고르던
고팡에서 술지게미 익는 소리가
어린 맛 깨우던
아버지 글 읽는 소리가
아득히 멀어져 가는 것에 대한
---
* 조 이삭.
** 밭.
♧ 영혼의 별
튀르키예 밤하늘
쏟아지는 별들 위로
우주별 하나 보내고
여섯은 가네
내전만큼이나 할 말은
많아도 할 말을 잃게 하는
우주의 법칙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말은
조물주는 ‘나’를 키운다,는
어머니의 강인력
♧ 가위손
소싯적엔 어머니가 단발을 해주셨는데요
말 그대로 사발 머리요
상상되나요
화롯불에 젓가락 달구어
파마머리 뱅뱅 말던 모습
생각나요
그래도요
아이고 저 집 딸들은 다 고와 이
그랬다는데
어머니만큼일 때요
딸 아들 신랑 머리까지 했거든요
복고풍 머리요
상상되시지요
애들 머리는 곱다면서도
아들 머리는 요샛말로 거 뭐라 했는데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 (한그루, 202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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