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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오승철 유고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의 시조(5)

by 김창집1 2024. 6. 28.

 

 

섶섬

 

 Ⅰ

 성산에서 놓친 해를

 서귀포서 다시 본다

 

 내 마음 칠십리는

 언제나 빈 포구인데

 

 한 줄기 뱃길 끝에서

 표류하는 섬이여

 

 Ⅱ

 보목동 산 1번지

 섶섬 해돋이야

 

 수천 년 늙은 바위에

 홍귤 꽃도 피워내고

 

 수난의 바다 곁에서

 파초일엽 키웠지

 

 Ⅲ

 이제는 지워야 하리

 이마에 걸린 수평선

 

 매달 음력 초사흘과 여드렛날은 용이 되게 해달라고 빌던 구렁이 용왕의 야광주를 찾지 못해 백 년을 바닷속만 헤매다 죽었다지만,

 

 아침놀 번진 칠십리

 전설보다 슬퍼라

 

 


 

비양도(飛陽島)

 

 

바다는

내 생활 유배지

 

아침 6

출어하면

우도 끝에

가시처럼 돋아 있는 불빛들

 

썰물 때는

한 줄기 길

사발꽃이나 피우다가

밀물 녘에야

비로소 섬이 되는 비양도

 

바다의 눈발이 더하면

새미야, 한솔아

그제사 성산포만한 동이 트고

 

아빠는

헤어진 그물코보다 슬픈

제주도의 동쪽 날개를 헤맨다

 

---

* 흔히 우도면 비양도를 제주도의 동쪽 날개, 한림읍 비양도를 제주도의 서쪽 날개라 부른다.

 

 


 

지귀도

 

 

아득한 옛날

위미리 사람들의 유산

 

이젠 갈매기도 머뭇대는

남의 땅인걸

 

어느 뗏목이 흐르다 머문 그 자리

그리움 하나로

눈 시리구나

가고 또 오는 것이

하늘의 일이련만

눈짓을 해도

말이 없고

우리가 살아있는 죄로

수평선보다

더 흐려 뵈는 위미리 산 146번지

 

 

              *오승철 유고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다층,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