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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장영춘 시집 '달그락, 봄'의 시조(3)

by 김창집1 2024. 7. 5.

 

 

나바론 절벽*

 

 

어쩌랴, 절벽 아래 저 파도를 어쩌랴

방향키 놓쳐버려 떠밀리고 떠밀려온

추자도 하늘길 따라

소금꽃이 피었다

 

나바론의 요새에 숨어든 병사들처럼

오늘 밤 태풍 전야 고요를 방심 마라

구절초 봉오리 쓸며

구구절절 되새기는

 

어쩌다 사는 일이 벼랑 끝에 서 있는 날

누군가 뭍으로 와 자일 하나 건네면

등 시린 저 꽃들조차

바람이고 싶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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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자도에 있는 절벽이 나바론 요새를 닮았다 해서 지은 이름.

 

 


  

자작나무 소묘

 

 

누구의 눈빛으로 위로되는 날 있지

어제를 묻고 온 자작나무 숲속에

묵묵히 바람 맞서며 속살 한 겹 벗겨내는

 

아무리 힘들어도 구부리진 않았어

하늘이 내어준 그 높이를 따라갔을 뿐

지나는 길손에게도 손 내민 적 없었네

 

한겨울 꼿꼿함에 너를 보며 견뎠어

사계절 아랑곳없이 덕질에 덕질해도

몇 해를 보내고서야 그제야 알게 됐지

 

때로는 휘인 가지에 이별을 불러오듯

한순간 솟아오르다 지는 게 사랑이라고

아직도 불시 한 점이 나를 향해 당기네

 

 


 

상사화

 

 

숭숭 뚫린 현무암 올레 밖을 서성이다

 

기어이 장맛비에 터져 버린 붉은 가슴

 

젖은 채 맨발인 그대 괜찮을까, 괜찮을까

 

 


 

외면했던 날, 뒤에 오는

 

 

꽃이 진 후에도 느닷없이 꽃은 또 피어

 

한겨울 오름 등성이 벌겋게 얼린 철쭉

 

선홍빛 시간을 녹일 햇살 한 줌 그립다

 

 

 

                  *장영춘 시집 달그락 봄(한그루,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