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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6)

by 김창집1 2024. 7. 4.

 

 

시작노트 2

 

 

시도 그렇다

현실의 내가 아등바등 일에 치여 모두 벗어던지고 싶을 때, 시가 나를 항해 손짓한다

나는 그 손을 한두 번은 뿌리친다

세상엔 복잡한 시보다 더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들이 많다고

하지만 그것들을 느끼고 얼마의 시간을 보내고 온 나는

그 즐거운 것들이 이끄는 곳에서

내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어떤 내 안의 무언가를 찾지 못하고 허우적대기만 했을

뿐이라는 걸

시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온 정성을 들이며 나를 달구며 두들겨야 한다

그래야만 시가 단단해진다

 

 

 

 

썩은 시가 되고 싶다

 

 

간간이 다가들던 풋 생각 날로 익어

그 생각 썩고 썩어 내 시가 발효되면

멍들어 아린 자국들 봄 햇살에 말리자

 

그러다 누군가의 지릿한 오줌 되고

그러다 누군가의 물컹한 똥도 되지

거기서 날밤 새도록 서성이고 싶어라

 

푹푹 썩어 들어가는 그 시 이름 앞에

내 생각을 또 다시 갈가리 찢다 보면

먼 훗날 내 시에서도 새순이 돋아나겠지

 

 


 

깊숙한 이빨

 

 

  살다가

  이 하나가 흔들린다 싶으면

 

  마음속 돌무더기 꿈들댄다 손닿으면 시큰시큰 바람 든 이마다, 어디가 아픈 건지 어디에서 오는 건지 근원지를 알 수 없는 통증이 날이 갈수록 뾰족해지고 깊숙해진다 마음의 돌기들, 흔들리는 통증을 견딜 때마다 때 되면 누구나 다 흔들리는 거라며 흔들흔들 대답한다

  가지런한 아버지, 누런 앞니 하나 남을 때까지

  가지런한 어머니, 누런 앞니 하나 남을 때까지

  딸 아들 칠 홉 송장이 되어가며 입들에게 오물오물 대주었던

  내게도 상어의 깊숙한 이빨처럼 상처투성이인 나를 더 세게 끌어안으며 아플수록 찬란해지는 통증의 노래를 부르려는 것이다

 

  그렇게 거룩한 밥이 되어주는 것이다 

 


 

석굴암에 오르다

 

 

행간을 놓친 삶이 휑하고 버거울 때

석굴암에 오른다

온갖 번뇌 씻기며

비워라 내려놓거라 바람 소리 스치네

 

사념도 내려앉는 암자에 다다르면

두 평 남짓 요사에

낡은 신발 한 켤레

수십 번 절하고서도 욕심을 못 버렸네

 

시간의 문을 닫고 가만히 누워본다

푸르고 그늘 좋아 노란 꿈도 꾸는 사이

누군가 흘리고 간 기도에

아기단풍 물들었네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동학시인선12,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