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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7월호의 시(7)

by 김창집1 2024. 7. 31.

 

 

갱년기 - 서병학

 

 

담양 죽녹원 대나무 숲

늘 푸르고 단단한 대나무에

젊은 연인들이 새긴 것 같은

가운데 하트 문양에 두 이름

 

잠깐 서서 나도

내 마음속의 하트 무늬를

한 번 더듬어 보는데

 

하트 무늬가 번개무늬로

찢어진다

 

 


 

맹문이 - 오명현

 

 

여름 한낮 땡볕을 피해

느티나무 아래에서

맹자孟子공손추장구상 제6*을 읽는다

 

나지막한 언덕 너머에서

예초기 도는 소리 커지더니만, 이내

맹렬하게 울던 매미 소리도 묻히고 만다

 

후끈한 열기에 실려 온 풀냄새는

진초록 그대로 폐포를 거처

혈관 곳곳을 누비면서 투석질을 한다

 

오래도록 즐거이 흠흠대는 것은

저들의 팔뚝 모가지가 가차없이 잘려서 나은

상큼한 피 냄새 덕분일진대

 

대사 반쯤을 욕설로 채운 영화를 보면서

내심 쾌재를 질러 댄 적이 있다

엔도르핀 분비치가 급상승한 탓이리라

 

세상사 욕설로만 그치라는 법 있던가

욕설 뒤에 손찌검, 손찌검 뒤의 뒤, 또 그 뒤

어마어마한 사태가 없으란 법 있던가

 

즐거이 흠흠대고, 쾌재를 질러 대는 건

풀들의 아우성은 듣지 못하고

난리를 당한 자들의 생사고락은

안중에도 없는 것

 

나는 무엇인가

맹자孟子를 조용히 덮는다

 

---

*人皆有不忍人之心.

 

 


 

조망대 - 윤순호

   -수락산 3

 

 

무당벌레 등딱지로 무장한

배낭군단 행렬이

꾸역꾸역 봉우리를 향하고 있다

골짜기를 건너는 전선 철로가

철탑을 휘감아 낭창거리고

까마귀 안내원은

단풍 역 도착을 알리느라 목이 쉬었다

어쩌다

헬리콥터가 휘젓는 비명이

나무들의 옹이에 긴장을 뭉쳐 놓았다

나무가 우수수 옷을 벗자

고스란히 드러난 굽잇길 산마루가

쌍굴로 자동차를 삼킨 뿌연 산기슭을

굽어보고 있다

파이팅!

무서리와 맞장을 뜬 개옻나무는

빨갛게 달아오른 중이다

 

 


 

오월의 물결 이규홍

 

 

푸르게 펼쳐진

오월 산야를 둘러보면

무엇인가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 있다

수많은 그림자 무리 지어

도도하게 흘러가는 물결

꽃잎 진 자리마다

무성한 잎 돋아

바라보는 이의 가슴을

출렁이게 하는

짙푸른 젊음이

계절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물결 속에

또 한 물결이 밀려오고

나도 하나의 물결이 되어

그들 속으로 들어간다

 

 


 

연못에서는 이산

 

 

새벽 윤슬을 타고 왜가리가 날아왔다

공원 관리인의 물관리 지침에 따라

지위가 넘나드는 작은 연못으로

 

겨울 오기 전까지는 가석방 없이 구속될 물

빛은 짙은 어둠이고 죽음이다

 

견고한 화강암 성채를 걷는

발걸음이 무겁고 심오하다

시선은 물속으로 고정되어 있다

문득, 목을 한껏 활시위처럼 당겼다가

미꾸라지를 잡아챘다

 

매우 황당하게 참살당했다

수면 위 세상에 대한 무지無知의 죄로

 

단지,

왜가리는 한 끼 식사를 했을 뿐인데

미꾸라지의 역사는 끝났다

 

여전히

아침 햇살은 눈부시고

 

청아한 새소리를 따라

오리 떼는 줄지어 물을 가른다

모두 평화다

 

 

                        *월간 우리7월호(통권43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