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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오영호 시조집 '농막일기'의 시조(4)

by 김창집1 2023. 10. 17.

 

 

검정 고무신 다섯

     -섯알오름 소고

 

 

누가

아버지를 빨갱이로 낙인찍었나

6.25 피바람에 밤 2시 예비검속자들* 싣고

달리는 GMC에서

벗어 던진 고무신

 

칠석날

한 줄로 세워

, 탕탕 쓰러진 후

아버지 고무신 따라

찾아간 섯알오름 탄약고

막아선 철조망 잡고

통곡하는 어머니

 

7년 애원 끝에 해제된 출입 금지

파헤친 구덩이엔 뼈와 뼈 엉겨 붙어

누군지 알 수가 없어

백조일손百祖一孫** 되었네

 

견우직녀 만나는 밤 집마다 향을 피워

제사상 영정 앞에 한 잔의 술을 올리고

엎드린 어머니 아들딸

흐느낀 지 72

 

원혼이 서려 있는 학살 터 길을 돌아

추모비 앞에 서면 명치를 꾸욱 누르는

다섯 쪽 검정 고무신

가득 고인 하얀 눈물

 

---

*6.25 전쟁 초기, 적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이라고 미리 잡아 가두었던 사람들

**조상이 각기 다른 일백서른둘 할아버지의 자식들이 한날, 한시, 한 곳에서 죽어 뼈가 엉키어 한 자손이 되었다는 뜻

 

 

 

 

4월의 평화공원

 

 

4

동백꽃이

뒹구는 거친오름* 자락

 

억새밭

뚫고 나온

어린 고사리들

 

고개를 들지 못하고

묵념만 하고 있다

 

늙은

휘파람새

행불자 묘비 위에 앉아

 

호오익

호오오익

수백 번 호명해도

 

벚꽃만

꽃비처럼 날리고

침묵으로 답할 뿐

 

---

*4.3 평화공원이 있는 오름

 

 

 

 

격납고

 

 

6

비바람 치는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절대로 잊지 말자

오색 리본 휘날리는

 

제로센

낡은 격납고엔

녹슨 철사 비행기

 

 

 

 

도틀굴 앞에서

 

 

싸락눈 흩날리는 선흘리 동백동산

 

48년생 동백나무 피고 진 동백꽃이

흥건한 곶자왈 길을 가다

도틀굴을 만났다

 

회색의 닫힌 철문 나드는 매운바람

 

떠도는 스무 원혼 훠이훠이 불러내는

선지피 토하며 우는

동박새도 보았다

 

 

 

 

슬픔의 꽃

 

 

  새 천년 접어들자 회색빛 하늘 아래

 

  구제역, 조류독감에 쓰러진 100만 마리 매몰된 산야의 물컹한 곳마다 비바람 불 때면 꼬끼오, 괵 괵, 꿀굴, 음매애 울부짖는 소리

 

  들꽃들

  무더기로 피어

  소리 없이 울고 있다

   

 

                         *오영호 시조집 농막일기(동학사,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