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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9)

by 김창집1 2024. 8. 7.

 

 

인동초

 

 

저수지

그 언저리

보리 베기 한창일 때

 

희노란 꽃잎 하나

꿀인 듯 쪽쪽 빨면

 

허기진

인동초 인생

목을 타고 넘었네

 

금은화 꽃이라서 그토록 좋아했나

 

장렬한 그 여름에 어머니 올 때까지

 

입안에

맴도는 단맛

기다림을 채웠네

 

 


 

한 사람

 

 

  오월엔

  떠오르는

  한 사람 이름 있데

 

  달 보며 눈길을 머물게 한 사람, 비 내리는 걸 좋아하게 한 사람, 게으른 나에게 부지런함을 일깨워주고 깊이 있는 사람이 되게 한 사람, 허세와 꼰대로 가득 찬 세상에 겸손과 절제를 알게 한 사람, 뒤틀리고 구부러진 나를 고요하게 펴준 사람, 흔한 조팝나무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 사람, 처음으로 사랑 때문에 울게 하고 애틋함을 알게 한 사람, 마음이 못내 아파 죽을 것 같고 몸도 기어이 아파, 다시 살아갈 마음을 내게 한 사람

 

  마침내

  그 아픔으로

  시를 쓰게 한 사람

 

 


 

오일장에서

 

 

왕왕작작* 떠나고

좌판만 남은 자리

발걸음 잡아끄는 소리에 멈춰서니

사 갑서,

막 싸게 주쿠다

 

고등어

눈이 풀린 채

면벽수행 중이다

 

초저녁 어스름이 시장에 밀려와도

넓은 좌판 지키는

몇 마리 고등어들

 

앙다문

이빨 사이로

기어 나오는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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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왕작작 : ‘여러 사람이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꼴의 제주어.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동학시인선 122,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