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동초
저수지
그 언저리
보리 베기 한창일 때
희노란 꽃잎 하나
꿀인 듯 쪽쪽 빨면
허기진
인동초 인생
목을 타고 넘었네
금은화 꽃이라서 그토록 좋아했나
장렬한 그 여름에 어머니 올 때까지
입안에
맴도는 단맛
기다림을 채웠네
♧ 한 사람
오월엔
떠오르는
한 사람 이름 있데
달 보며 눈길을 머물게 한 사람, 비 내리는 걸 좋아하게 한 사람, 게으른 나에게 부지런함을 일깨워주고 깊이 있는 사람이 되게 한 사람, 허세와 꼰대로 가득 찬 세상에 겸손과 절제를 알게 한 사람, 뒤틀리고 구부러진 나를 고요하게 펴준 사람, 흔한 조팝나무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 사람, 처음으로 사랑 때문에 울게 하고 애틋함을 알게 한 사람, 마음이 못내 아파 죽을 것 같고 몸도 기어이 아파, 다시 살아갈 마음을 내게 한 사람
마침내
그 아픔으로
시를 쓰게 한 사람
♧ 오일장에서
왕왕작작* 떠나고
좌판만 남은 자리
발걸음 잡아끄는 소리에 멈춰서니
사 갑서,
막 싸게 주쿠다
고등어
눈이 풀린 채
면벽수행 중이다
초저녁 어스름이 시장에 밀려와도
넓은 좌판 지키는
몇 마리 고등어들
앙다문
이빨 사이로
기어 나오는 깨달음
---
*왕왕작작 : ‘여러 사람이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꼴’의 제주어.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 (동학시인선 122, 2024)에서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채성 시조집 '메께라'의 시조(15) (0) | 2024.08.09 |
---|---|
월간 '우리詩' 8월호의 시(1) (0) | 2024.08.08 |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의 시(9) (0) | 2024.08.06 |
월간 '우리詩' 7월호의 시(8) (0) | 2024.08.05 |
'혜향문학' 2024 상반기호의 시(3) (0) | 2024.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