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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순선 시집 '어느 토요일 오후'의 시(14)

by 김창집1 2024. 8. 10.

 

 

밥심

 

 

오랜 세월 견디어온

고목 같은 식당 이름

 

식당 귀퉁이 처마 밑에

비루먹은 나무 한 그루

천덕꾸러기처럼 모질게 자라다

어느 날 불끈

밥심으로 식당 지붕을 뚫고

하늘 향해 두 팔 벌렸다

 

쇠락해 가는 지붕 위에서

공중에 묘판을 만들고

불끈불끈 밥심으로

봄을 피워 올렸다

 

 


 

순종

 

 

당기세요

 

우린 참 불편한 관계다

내가 가까이 기는 것을 거부하듯

그대의 무게가 나를 자꾸

밀어낸다

여기까지 용기를 내어 찾아왔는데

거절 아닌 거절 같은

한발 뒤로 물러서라니

그렇다고 그대가 내게로 걸어오겠다는

약속도 아니 면서

 

그래도

당기세요

댄스를 신청하듯

공손히 예의를 갖춰

오른발을 사뿐히 뒤로

무릎 굽히면서

투명한 사각 하늘을 향하여

구름 손잡이를 잡고 가볍게

 

문을 당기세요

 

 


 

아침을 여는 수다

 

 

꽃잎이 조용히 눈을 뜨는 시간

어둠을 밀어내며

나무들이 살랑살랑 허밍으로

아침을 열 때

 

각각각 각각각

가깝고도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새벽 어시장의 팔딱거림 같은 생기로

아침을 깨운다

 

클린하우스 쪽 동네가 수상하다

시장바닥에서 목소리 높여 웅성거리듯

까치들의 수다 속에

활력을 뿜어내는 삼도동의 아침이

열리고 있다

 

 

                        *김순선 시집 어느 토요일 오후(한그루, 2024)에서

                                   사진 : 북극 빙하 속 시원한 그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