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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8월호의 시(3)

by 김창집1 2024. 8. 18.

 

 

 

 ♧ 밤과 낮 사이 - 이중동

 

 

푹신한 소파에 앉아 오징어땅콩을 씹어요

오징어는 고소하고 땅콩은 짭짤합니다

봉지에 손을 넣자 오징어는 땅콩을 숨기고

먹물을 쓰며 도망칩니다

손등에 묻은 얼룩에서 파도 소리가 납니다

 

집어등 출렁거리는 밤배를 탑니다

붉게 코팅된 실장갑을 끼고요

땅콩을 숨긴 오징어를 잡으러 밤바다로 갑니다

인기척을 감추려 그림자를 숨깁니다

울렁거리는 집어등이 구토를 하고요

실장갑 안으로 모여든 어둠에 깜박 잠이 듭니다

 

밭둑을 내달리는 그림자가 보이고

그림자는 깊은 구덩이로 빨려 들어갑니다

허공에 손을 휘젓던 아이,

잠에서 깨어나니 얼룩이 묻어납니다

골목길에 비릿한 바다 내음이 흩어집니다

 

숨어 있던 불안을 데리고 밭으로 갑니다

단단해진 땅콩이 주렁주렁 올라옵니다

엄마 모르게 땅속에 수심을 묻습니다

아이는 비릿한 얼룩을 지우며

밭둑을 따라 걷습니다

 

허연 여명이 바다 위로 번집니다

오징어가 갑판에서 헐떡입니다

수평선 위로 태양이 불끈 솟아오릅니다

 

 


 

용기 - 이학균

 

 

새는 스스로 등지를 떠나지 못하면

날개를 접은 채

자신의 숨소리에 자신을 묻어야 한다

 

나를 가장 잘 아는 나지만

내 눈으로만 나를 보면

진정한 나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익숙하고 안락한 것이

때론 가장 위험한 것이 되고

비상의 날갯짓을 누르는 난류가 된다

 

모든 것은 위험하게 보이고

위험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속으로 뛰어들 용기가 비로소 새를 날게 한다

 

 


 

- 이화인

 

 

길이 없다고 애둘애둘하지 마라

세상의 길은 마음속에 있다

 

새들은 허공에서 길을 찾고

멧짐승은 산속을 헤매며 길을 튼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길을 만든다

 

보이는 길만이 길은 아니다

모든 길은 마음속에서 시작된다.

 

 


 

조각보 - 임승진

 

 

이쪽 간은 이런 색

저쪽 간은 저런 색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해도

곁에 있으니 서로 닮았네

 

어떻게 왔는지 알 수 없어도

함께 있으니 서로 어울리네

 

같은 생각으로 만났기에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아

 

이리저리 재어 보아도

어긋나지 않는 보자기

 

조각조각 모여서 태어났지만

오로지 하나의 일을 할 뿐이네

 

 


 

꽃피는 어머니 임영희

 

 

어머니가 내 집에 계시니

나라의 녹을 먹는 첫째는

녹용이나 산삼 등

귀한 보약을 사 나르고

근거리에 사는 둘째는

조석으로 들여다보고

잔정 많고 다정한 막내는

소소한 간식거리를

이것저것 들고 찾아왔다

 

황금 같은 주말에 다 함께 모여

저녁 식사 후 담소를 나누다가

셋째가 슬며시 일어선다

누나가 어머니 때문에 고생이니

조카들에게 눈치가 보인다면서

자동차에 싣고 온

묵직한 선물 보따리를 건넨다

월 이런 걸 하면서도

바쁘게 보자기를 펼치니

고급 한우가 부위 별로 가득하다

내가 업어 키운 막내는

우리 언니 힘내라고

 

도톰한 돈봉투도 내밀고

늙은 내 에 새 신도 신겨 주며

미안타고 두 손 꼭 잡고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찬다

언니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로 바꿔 준다는 막내

 

사는 게 다 고만고만한데

서로 챙겨 주고 싶어 안달하는

피붙이들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노모의 메마른 얼굴에

미소가 꽃처럼 피어올랐다

 

 

                 *월간 우리8월호(통권 434)에서

                 *사진 : 여름 들꽃들  순서대로 -  덩굴용담 흰진범 물봉선 붉은사철란

                             누리장나무 한라돌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