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동
1.
이렇게 오려니
어제도 그제도 그렇게
허무하게 시리던가요
마음만 먼저 나서는
저 뱃머리
몇 시쯤에 가야
가파도에 가려나
우도에 가려나 하면서
서우봉 등대에서
뱃고동 소리만 듣다 여운만
남기길 며칠이던가요
2.
이렇게 오려고
우수수 낙엽만 떨구었나
시린 마음 달래주려
난장으로 가라 했나
그 마음 씀씀이에 오늘 모처럼
단장 곱게 하여
곱디고운
이름도 몰라 성도 모른
말해줘도 모른다며 몰라도
그렇게 살라기에
나 그렇게 어여쁜 것들
칠천 원에 입양하여
다육 다육
3.
야야 고마해라
이만 혀도 된 거 아이가
가스나 하고는
그래도 그게 아니라서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꼬
좀 더 길게 보면 안 되나요
4.
쩌어기 보이소
요기 앉아서 보면
뭔지는 몰라도 예
관탈섬도 보이고 추자섬도
있다는디 난 한 번도 못 가봤어라
나와 같이 가보자는 이들은 별거
아니라 하고 자식하고 가보자니
지 살기 바쁜가 보고
할배와 가려니 친구가 좋지
늘그막에 그러면서
그렇기도 하고 말입니다
♧ 와인 잔
내 것이 커 보여
네 것이 커 보여
쪼르르 걸어 놓은
와인 잔
네 것도 내 것도
아닌 뱅쇼(Ⅵn chaud)
우리의 정은
볼 붉은 선율에 맞춰
구근 근
목 을 타는 그 맛
연속성은 이제부터 그렇게 가는
붉은 의식
시그널 묻어나는 밤의 향연 속
뜨겁게
♧ A1 에어컨
우리 집 식구 하나 늘었다
냉장고 공기 청정기 홈 세트 프라이팬은 홈플러스
덤으로 가는 인생 우리 열심히 살아보자
you got it (알겠습니다)
♧ 5월의 시
저희를 보세요
새들도 노래하잖아요
지지배배, 삐죽거리다
까르륵 웃기도 하고
휘파람도 날려요
저기를 보세요
휘파람 소리에 말을 걸어와요
팝 선율에 맞춰 합창하잖아요
나를 봐봐요
그대와 눈 맞춤에 마음은 더
싱그러울 거예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
처럼요
하늘과 바다와 시가 있는
낭만의 오월
나르는 새들처럼
어버이 마음으로
스승의 마음으로
부처님 가피 물들어 보는
오월이에요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 (한그루, 202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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