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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10)

by 김창집1 2024. 8. 20.

 

 

시작노트 5

 

 

자주 생각하는 방향으로

내 마음을 살짝 기울인 대상을 닮아가는 모습으로

그렇게 삶은 물들게 마련이다

어느새 내게 스며든 시가 있다

내가 그 다른 시를 보았을 때

시가 물컹 좋아졌다

 

 


 

삘기꽃

 

 

꽃인 줄 알았는데 먹고 싶은 껌이었다

껌인 줄 알았는데 나풀나풀 꽃이었다

입안에

질겅거리며

달콤함 느껴지는

 

삘기는 내게 있어 아카시아 껌이었다

오월에 어김없이 뾰족뾰족 올라와

배고픈

아이의 배를

채워주던 밥이었다

 

때로는 껌이 되고 때로는 밥이 되다

삥이치기 놀이로 해지는 줄 모르다가

향기만

남겨 놓은 채

홀연 꽃이 돼버리는

 

 


 

다른 시를 보네

 

 

한 분은 시 잘 써서 이름이 나

나서서 이 상 저 상 챙기기 연연하고

저 혼자 잘난 갑질에 꺾여버린 시심들

 

한 분은 사람 좋아 이름이 나 있었네

밥 한끼 사주면서 살뜰히 생겨주고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 시심을 살려쥤데

 

사람도 솎아내야 그 자리 새살 돋듯

비워 문 그 자리에 시들이 살아났네

이제야 사람 냄새 나는 시, 문득문득 보이네

 

 


 

보그락이*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는 올 수 없다

 

새삼스레 꺼내들고

지켜야 할 약속도 없다

 

그래도

을씨년스런 방

보그락이 널 당긴다

 

---

* 보그락이 : ‘보송보송하거나 폭신폭신한 꼴의 제주어.

 

 


 

말산디 보말산디*

 

 

의사 수 증원되면 의료가 붕괴된다며

전공의 집단 사직에 의료대란 일어나

응급실 입구와 출구, 발걸음만 분주하다

 

불통인지 불편인지 제 입장만 내는 사이

근무하다 뇌출혈로 쓰러진 간호사는

수술을 제때 못 받아 꽃다운 생 끝냈네

 

천지가 한 방향인 걸 바보도 먼저 안다

말산디 보말산디 못 배우고 못 가진 자

목숨도 저들의 손에 쥐락펴락 당하네

 

---

* 말산디 보말산디 : ‘말 같지 않은 말을 하거나 들었을 때, 핀잔이나 반박하면서

하는 말의 뜻을 지닌 제주어.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동학시인선 122,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