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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윤숙 시집 '저 파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4)

by 김창집1 2024. 8. 26.

 

 

안과 밖

 

 

싹 사울 나무 아래 길게 누운 죽음 하나

 

이 세상 어떤 것이 그보다 더 적막한가

 

영혼의 말발굽 소리 정수리에 와 꽂힌다

 

 


 

고비에서

 

 

광활한 대지는 어딜 가도 제자리 같아

 

망망대해 떠밀리며 나 홀로 표류 중이다

 

간신히 무릎 세우면 이내 다시 패대기치는

 

섬과 섬이 짐승이 허공으로 흘러가고

 

짓이겨진 말발굽 자국마저 감쪽같아

 

텅 빈 몸 바람을 품어 헛배가 불러왔다

 

노래를 들을 수 없는 건 후생의 기약일까

 

그림자 따라나선 길 모래사막 뿌리내릴

 

손발톱 뭉개지도록 후벼 팔 나의 시!

 

 


 

별똥별 하나

 

 

어둠이 저를 낮춰

남은 숨 몰아쉴 때

 

신성의 입구부터

빛나던 낙타가시풀

 

우리는 외길 위에서 어디에 있었던 걸까

 

유목의 저 파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

 

답신 같은

전언 같은

그 음성 들었는지

 

순식간 감전된 하늘

귀울음 저릿하다

 

 


 

협죽도

 

 

치명적 맹독이라,

등 돌리 던 쓸쓸함에

 

공항로 베어내던 그 오랜 기억에도

 

솟구쳐 다시 솟는 잎,

붉은 꽃 피워낸다

 

베두리공원 받든 여름

수행의 그림자에

 

차오르는 홍조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치사량,

가까이 마라

 

꽃 앞에 중독되다

 

 


 

이상한 독서

 

 

초원이란 책을 펴면 사막이 따라온다

 

바람결 흘러들어 길 잃은 두 마리 양

 

지난밤 차려진 성찬, 증표처럼 떠돌고

 

그리운 올레 끝집 치달아 들어서면

 

살코기 발라주시는 할머니 옹이 진 손

 

품앗이 시끌벅적 마당엔 돗추렴 붉은 얼굴들

 

입안에 고인 단맛 삼키지도 뱉지도 못해

 

그 자리 틀어 앉아 펼쳐 드는 페이지마다

 

사막을 다시 읽는다, 함께 나선 어린 양들

 

 

 

                        *김윤숙 시집 저 파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가히, 2024)에서

                                            *사진 : 파란하늘이 보이는 K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