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과 밖
싹 사울 나무 아래 길게 누운 죽음 하나
이 세상 어떤 것이 그보다 더 적막한가
영혼의 말발굽 소리 정수리에 와 꽂힌다
♧ 고비에서
광활한 대지는 어딜 가도 제자리 같아
망망대해 떠밀리며 나 홀로 표류 중이다
간신히 무릎 세우면 이내 다시 패대기치는
섬과 섬이 짐승이 허공으로 흘러가고
짓이겨진 말발굽 자국마저 감쪽같아
텅 빈 몸 바람을 품어 헛배가 불러왔다
노래를 들을 수 없는 건 후생의 기약일까
그림자 따라나선 길 모래사막 뿌리내릴
손발톱 뭉개지도록 후벼 팔 나의 시詩여!
♧ 별똥별 하나
어둠이 저를 낮춰
남은 숨 몰아쉴 때
신성의 입구부터
빛나던 낙타가시풀
우리는 외길 위에서 어디에 있었던 걸까
유목의 저 파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
답신 같은
전언 같은
그 음성 들었는지
순식간 감전된 하늘
귀울음 저릿하다
♧ 협죽도
치명적 맹독이라,
등 돌리 던 쓸쓸함에
공항로 베어내던 그 오랜 기억에도
솟구쳐 다시 솟는 잎,
붉은 꽃 피워낸다
베두리공원 받든 여름
수행의 그림자에
차오르는 홍조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치사량,
가까이 마라
꽃 앞에 중독되다
♧ 이상한 독서
초원이란 책을 펴면 사막이 따라온다
바람결 흘러들어 길 잃은 두 마리 양
지난밤 차려진 성찬, 증표처럼 떠돌고
그리운 올레 끝집 치달아 들어서면
살코기 발라주시는 할머니 옹이 진 손
품앗이 시끌벅적 마당엔 돗추렴 붉은 얼굴들
입안에 고인 단맛 삼키지도 뱉지도 못해
그 자리 틀어 앉아 펼쳐 드는 페이지마다
사막을 다시 읽는다, 함께 나선 어린 양들
*김윤숙 시집 『저 파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 (가히, 2024)에서
*사진 : 파란하늘이 보이는 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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