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 – 오세진
순전
낳은 님
기룬 님
목소리만
동그랗게
와
닿은 곳
수이
숨 붙어
와
닿을 수 없는 곳
생심
마지막 숨을
걸고
와
닿을 수 있는 곳
세월
숨을 들이고
숨을 내고
기적 닮게
와
닿을 곳
♧ 코마 7 – 이정은
@정보입니다_참고하세요_마지막이_위험합니다_유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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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이 보이지 않아요
봄은 없는 계절입니다 가을은 돌아오지 않아요
간절기에서. 떠. 돌. 거에요.
그는 그를 유리방에 가두고 있다
위로해준다고 하면서 깨어날 수 없을 기 같아서 잠자면 죽을 것만 같아서 어둠 속을 건너뛰듯이
수면제를 입속으로 밀어 넣어 주었다
침이 흘러나와 삼켜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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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하고 싶지 않아요
가여운 약, 조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국민학교의 밤 – 현택훈
날이 저물면 검은 바람이 국민학교 깨진 유리창 사이로 기어들어간다. 안개처럼 스멀스멀 기어들어가서는 우헤헤 까르르 웃으며 장난을 친다. 복도 위에 찍힌 까르르 우헤헤 소리 발자국 검은 먼지 되어 물귀신처럼 잠기곤 한다. 신발장엔 어제 햇빛에 말린 듯 깨끗한 실내화 및 켤레 가지런히 놓여 있으나 그 신발을 싣기엔 몇은 발이 없고, 설령 발이 있다고 해도 문수가 맞지 않는다. 심연의 칠판엔 허연 분필로 쓴 글자들이 나타났다가 으스름달 위로 구름이 흐르듯 스르륵 사라지곤 한다. 교실 책상들은 잘 정돈된 무덤들처럼 가지런하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풍금소리 들려오면 빛바랜 졸업사진 같은 성주(城主)는 늙어간다. 화장실엔 빨간 종이와 파란 종이가 및 장 놓여 있고, 귓것이 미술실 거울 속에서 실실 웃고 있다 숙직실 문은 굳게 닫힌 채 이미 오래이고, 살생부 같은 표창장이 복도 벽에 매미 허물처럼 붙어 있다. 귀 기울이면 파도 소리 들리는 운동장에서 입꼬리를 올린 여호의 울음. 돌림병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이 밤바람 속에서.
♧ 카프리와 스낵 - 홍미순
그믐이 다가오면 쌓이는 긴장감
달세를 재위야 초승달이 다시 뜬다
카프리와 스낵이 만난 그믐밤
유리잔 꼭대기에
넘칠 듯 멈추어 선 하안 거품
돌하르방 미소처럼 부드럽다
펄펄 끊던 용암이 넘쳐흐르듯
떼 지어 바쁘게 몰려간 친구들
그 열정 바사삭 김빠진 퇴근길
박성내 따라 천천히 흐르고
흐르다 멈춘 자리
섬을 벗어나지 않았다
돌하르방을 닮은 사장님
카프리 한 잔에 바삭바삭
부서지는 발걸음
쌓였던 스낵이 조금씩 걷다보니
표정이 점점 차오르는 초승달
어느새 카프리를 부르는 긴장감
나는 그믐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 황문희
너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었지 운동장이 둘로 나뉘었다가 무성한 풀이 자라 공이 굴러가지 못하는 곳으로
아이들이었다가 아이였다가 아이가 아닌 네가 학교에 간다
교과서 속 영이와 철수의 대화가 책상 위에서 그들만의 시간으로 흘러내린다 친구는 없어도 돼 사랑과 우정은 존재했다던데 네가 없어서 비로소 사이좋은 친구가 되지 이 넓은 지구에서 새로운 너를 찾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잖아 누구는 학교를 믿지 못한다
달에 누고 온 똥을 수거해야 한다잖아, 우리들 바이러스가 우주에 둥둥 떠다니다가 읍, 면, 도서, 도시까지 무작위로 덮치면 죄도 없는 자궁은 퇴화되어 아기가 집을 짓지 못하네 바이 러스에 감염이 되어 모두가 사라지는 날
입학생이 연속 및 년간 없네요
학생 대신 입학한 교사가 교실 가득 눌어붙은 아이들의 웃음을 떼어낸다 과거에 어떤 아이들이 살아 진화해 왔는지, 생명의 증거를 찾으려 골몰한다 지구 밖 운석이 떨어져 교실 속 아이들이 멸종했을지도 몰라, 빙하기가 찾아와 서로를 안아주지 못했을지 몰라, 이전 사람들이 싸질러놓은 바이러스가 사회를 먹은 거야, 비밀리에 연구는 진행됐지만 학교에 다니올 아이가 없어 증명할 수가 없다 노인보호구역에서 노인을 보호해 주는 이는 노인뿐이고
그런데 학교는 어디에 있습니까
* 계간 『제주작가』 여름호(통권 85호)에서
* 사진 : 제주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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