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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11)

by 김창집1 2024. 9. 7.

 

 

*

 

 

소낭 폭낭 단풍낭

낭군 이름 같아요

한겨울 모진 바람 끝끝내 버텨내는

그 이름

부를 때마다

끝소리가 낭랑한

 

앵두낭 매화낭 틀낭

낭자 이름 같아요

불러도 대답 없어 한동안 기다려도

산벽을

넘지 못하고

울림만 되돌아오는

 

누가 먼저 낭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 연애질

낭자 낭군 콧소리에

 

마파람 지나가다가

자 하나 심어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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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의 제주어.

 

 


 

물굿*

 

 

밥이 그리 어렵단들

이 풍파에 나섰냐고

괭과리는 괭괭괭 북소리는 둥둥둥

용수리

굴곡진 갯가

동네 심방 춤춘다

 

술에 취한 지아비

새 콩밭 갈러 가고

갈고리 든 지어미

하군 물질 갔댔지

날미역

갯돌에 올라

초저녁을 읽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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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굿 : 어부나 해녀가 일을 하다가 죽었을 때, 그 영혼을 달래려고 바닷가에서 치러지는 굿.

 

 


 

수의

 

 

  나 죽거든 궤에 있는 수의를 입혀다오

 

  용수리에 볕드는 날이면 어머니는 수의를 빨랫줄에 널곤 했다 야이도 벳을 쒜와사 좀 안 인다그렇게 애지중지 아끼던 수의는 어머니 구십 평생을 가둔 굴무기 궤짝에서 눅눅해지기 시작했다 주인이 떠난 것을 눈치라도 챘던 건지, 어디서 기어든 좀벌레 몇 마리 꼼지락꼼지락 그 안에 집을 지었고, 어디쯤에선가 뽕잎을 먹고 자란 누에는 아기잠에서 막잠을 자더니 어머니 저승 갈 때 편하게 입고 가라고 자꾸만 실 꾸러미를 자아왔다 물레야 돌아라, 물레야 돌아라, 회동그란 나프탈렌이 진한 향기 퍼트려도 질긴 세월에 좀먹히는 어머니의 수의, 아직도 삶의 근황을 둘레둘레 풀고 있다

 

  누군가 입혀주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앞집 할망

 

 

뇌출혈로 쓰러져

실려간 앞집 할망

 

금방, 돌아올 듯

맨발로 가셨는데

 

흙 묻은

고무신 한 짝,

돌담 위에 앉아 있네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동학시인선12,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