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별오름 방애불
풀이 탄다
어둠이 탄다
가연성 울음이 탄다
비명과 아우성이 접신의 춤을 출 때
광기와
분노를 사르는
장엄한 진혼 축제
태울 것 다 태우고
민둥해진 오름 위로
뜨거운 불티들이 별빛처럼 내리는 들녘
불길에
신명을 지핀
봄이 새로 돋는다
♧ 자구내 해넘이
머리 푼 구름들이 먼 하늘로 타래친다
갈지자 높바람에 메밀꽃 핀 포구 너머
흉어기 저녁 바다가
속 빈 매운탕을 끓인다
아흐레 멀미에 지친 차귀도도 드러눕고
거품이 거품 물고 부침하는 냄비 해안
가슴에 구멍이 뚫린
돌덩이만 그득하다
장기부채 고봉밥에 더 허기진 수월봉엔
간신히 수저를 든 창백한 낮달이 홀로
고수레, 고수레하며
별빛 가만 뿌리고 있다
♧ 남극노인성
겨울에만 볼 수 있는 남녘의 별이 있다
낙엽 흩는 추분에서 꽃 피는 춘분까지
구명의 벼릿줄처럼 환한 빛을 드리우고
풍어와 장수의 기원 하늘에 매달릴 때
어둠살 낀 수평선에 등댓불을 밝히는 별
멀고 먼 이어도 해역 집어등이 켜지듯
제 모습 다 지우고 소리로만 우는 바다
알도 없고 심도 없이 살아온 목숨 같아
선득한 바람 앞에도 두 볼이 홧홧해진다
해가 진 다음에야 별이 뜨는 법이라며
흰머리 억새들도 손을 가만 모으는 밤
어느새 천구의 축이 봄 쪽으로 기운다
♧ 범섬
백두산 호랑이가 한라 앞에 엎드렸다
갈기 세운 파도 떼가 환해장성 넘볼 때면
화산암 주상절리를
이빨처럼 세운 심
반골의 테우리들 수장시킨 한 사내가
포효하듯 진혼하듯 해식동굴 울려놓고
핏빛 놀 뚝뚝 떨구며
섬을 짚고 일어선다
♧ 모슬포
모슬포!
그 말 속엔 그리움이 끓고 있다
적소의 담을 넘던 옛 사내 눈빛처럼
물보다 점성이 높은
까치놀에 젖는 항구
썰물에 쓸려간 이들 밀물지면 돌아올까
바람의 길을 따라 멍 자국이 뵈는 바다
퇴적된 시간의 지층
파도 소리에 잠긴다
가슴이 시린 날은 바닷새가 먼저 안다
시푸른 수평선에 메밀꽃이 피어나면
송악산 해안 절벽에
알을 낳듯 쏟는 울음
알뜨르 까마귀도 목이 쉬는 겨울에는
수장水葬 치른 섬들 앞에 테우 한 척 띄워 놓고
마라도 하늘에 뜨는
남극노인성 쫓고 싶다
* 임채성 시조집 『메께라』 (고요아침, 202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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