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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윤숙 시집 '저 파랑을 네게 줄 것이다'의 시(7)

by 김창집1 2024. 9. 29.

 

 

바위떡풀

 

 

떡 하나 오롯 주면 바위를 내어주랴

 

골짜기 숲 절벽 틈새 공중에 핀 야생초

 

한동안 외롭지 않다, 둘이 서로 받들어

 

 


 

덖음차

 

 

새파란 청춘 그 어디 등 비빌 데 있었나

 

접히고 꺾인 이파리 제 몸에 입힌 상처

 

아홉 번 넘어지고야 수굿이 저를 놓아

 

노스님 손바닥에 배어든 찻잎 하나

 

삭정이 뾰족한, 내게도 물이 들어

 

땀내도 풀 비린내도 참으로 잘 덖어낸 시절

 

 


 

파노라마

 

 

어제 한 약속이 새까맣게 지워졌을까

숲 기슭 가을볕에 끌려 나은 누룩뱸

논오름 곶자왈 위로 빙빙 돌던 제주 참매

 

야생의 눈빛에도 때로는 어긋나서

빗살무늬 활엽수림 불사르는 가을 앞에

자욱이 취하던 연기 자꾸 발을 헛디뎌

 

등성이 떠밀려온 배, 끌어당기는 바다와

뇌 속을 덩, 텅 헤집어 인화되는 생각마저

통로를 겨우 벗어난 바로 그때 누가 툭, 친다

 

 


 

새의 전설

 

 

한 생의 깃을 세워 저 하늘 받들었을까

 

폭풍을 맞받아쳐 하얗게 솟구친다

 

수평선 그 누가 여나 시퍼렇게 부릅뜬 눈

 

치소기암 둥지 속 간절한 소망 하나

 

더 이상 물러서지 않을 벼랑 위 정지비행

 

가만히 귀 기울이니 공회전 저 날갯짓

 

 


 

여정

 

 

자미원 철로 변의 쌓아 올린 폐침목

 

서로가 기대앉아 밀쳐내는 무게에도

 

나란히 뒤돌아보며 이내 또 낯선 여행

 

마찰음 짓눌린 어깨 슬며시 받쳐주며

 

함께 앉은 눈높이 서로 다른 창밖 풍경

 

일탈을 여태 꿈꾸어 발바닥이 들리는지

 

터널 뒤 다시 터널 삶의 터널 지나며,

 

뙤약볕에 먹먹해진 산중의 바닷물 속

 

당신의 숨비소리가 가슴을 쾅쾅 친다

 

 

                  *김윤숙 시집 저 파랑을 네게 줄 것이다(가히,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