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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9월호의 시(6)

by 김창집1 2024. 9. 30.

 

 

위로 임보

 

 

아직 시비도 문학관도 없고

세울 땅도

세워 줄 사람도 없다고

너무 안타까워 마시라

 

만일

그대가 좋은 작품만 낳는다면

이 세상 사람들의 가슴이

그대 시의 비각이 될 것이고

 

이 세상이 곧

그대의 문학관이 될 것이다

 

 


 

장맛비 정봉기

 

 

갑진년의 6, 7

그날이 그날인데

자연의 시계는 얼추 맞아 간다

기후 온난화, 기상 이변이라지만

탈이 나면 난 대로

, , 년은 흐르고 있다.

의지의 날을 세우고

격정의 말을 내 세운들

잡아 둘 수 없다.

숲을 타고 넘는 바람을

무슨 수로 돌릴 수 있겠는가.

힘겨루기는 상처만 덧내

공멸로 갈까, 걱정이다.

에서 멈추었으면 한다.

통증에 아파하는 장맛비,

거칠어지는 모양새다.

 

 


 

나들목 - 정순영

 

 

하늘을 머리에 이고

드나들 줄 모르다가

 

황야에서

단번에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어

 

말씀을 드나들며

하늘을 보네

 

드나들면서

생명의 꼴을 배불리 먹네

 

 


 

목단꽃 당신 허기원

 

 

영롱한 이슬방울 가신 님 눈물일까

예쁜 꽃 은빛 여울 목 메인 저 여인아

초승달 새벽 별 따라 풍경 소리 서러워

 

눈부시게

 

핀 자홍紫紅

꽃송이 어여뻐라

 

여우비

 

시샘 속에

다소곳이 터진 꽃

 

그것은

 

핀 게 아니라

그리움이 열린 것

 

눈물꽃 하안 별꽃 내 가슴에 피어 운 꽃

사랑해 않았으면 울리지는 말았을 걸

먼 훗날 꿈속에 서도 너를 잊지 않으리

 

 


 

임차인 김나비

 

 

태어난다는 것은 몸을 빌리는 일이지요

공인중개사의 소개도 없이, 임장 한 번 못 간 채로 말이지요

가진 건 영혼밖에 없으니 그걸 보증금으로 걸어야겠어요

고 살을 붙여 시간을 들이는 일이겠지.

사는 건 몸에 숨을 불어 넣고 살을 붙여 시간을 들이는 일이겠지요

 

입주하는 날은

복사꽃 해사하게 웃는 날이면 어떨까 싶다가도

눈발이 세차게 흩날리는 날도 괜찮다 싶어요

추운 날일수록 가족의 눈빛이 난로처럼 느껴질 테니까요

 

어차피 빌리는 거 반짝이는 몸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봐요

잘나가는 엄마 아빠도 있고 요크셔테리어도 한 마리 있으면 좋겠어요

카랑카랑하게 짖으며 나를 지켜줄,

마당엔 그네가 있는 집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운 중에 가장 큰 운이 몸을 잘 빌리는 것

멋진 몸은 운 좋은 사람들 것이겠지만,

언젠가는 내게도 운이 들어오는 날이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시인의 몸이네요

이번 생은 폭망이지만

쌍방 계약이 아니니 취소할 수도 없고

시를 팔아 비루하게 살 수밖에요

 

돌려준다는 것은 몸을 벗는 일,

늦털매미처럼 껍질을 벗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반환의 의무는 꼭 지켜려 해요

 

무릎 나온 바지 벗듯 미련 없이 발을 빼야죠

노을이 상리 터널 병목현상처럼 몰려오는 저녁,

우암산 휘도는 바람으로 귀를 씻고

맡겨 놓은 영혼을 찾아

깔끔하게 그렇게,

 

 

*월간 우리9월호(통권43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