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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의 시(8)

by 김창집1 2024. 10. 2.

 

 

세화리에 가다

     -금붕사

 

 

  아주 오래전 길 따라 잠시 스쳐 지나던 자리, 상상도 못 했던 사연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간이다 말로만 듣던 43의 흔적은 쫓는 자와 쫓기던 자에 이어 숨겨줬다는 어거지로 질질 끌려가 수십 발 총탄에 생을 마감해야 했던 스님, 내 생전 피부로 느껴보지 못했던 세월, 그 환영에 끌리듯 생생하게 귀로 눈으로 영접하는 시간이다 현재, 주지 스님 구술에 의하면 이성봉 스님의 이모 뒤를 이어 조카인 자신이 지켜나가는 금붕사, 그때 총살과 화재로 남은 것은 역사를 지켜내는 오십 나한’, 뜻은 잘 모르나 그 보존에 스님 행보에 경의를 표하며, 이성봉 스님 뻥뻥 뚫린 수십 발 흔적에, 무모하게 영계로 입적하신 스님 몸에 행여 지령이 들까 봐 하나하나 구명 메워 합장하던 그 때 그 모습이 생생하여 부디부디 이생에 중생들 어루만지며 영면하시길 소원해 보는 그날의 넋

 

 


 

세화리에 가다 2

 

 

1. 다랑쉬굴

 

 

  잔인한 달이었다

  코로나 열풍이 나에게도 비집고 들어오고야 말았던 사월의 초입,

  한 달 내내 그 여파는 연속성이 되고 대상포진이 다시 숨통을 조이던 사월,

 

  몇 해 전, 작가회의 진혼제에 따라나섰던 생각 들추며 다시 가보리라 했던 다랑쉬굴, 이번 43제에도 묵인해야 했던 그날이 되어 사진으로 볼 수밖에 없었던 행위의 진혼곡

 

  다시 오월이 되어 찾아가는 현장 세화리 예술제 항쟁, 에 걸어본다

  해변에서 산속으로 숨어들어 지내야 했던 그때의 사태, 들으며 그 환영의 대열에 들었다 이유 없이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다랑쉬굴 터전, 토벌대들의 무지한 학살과 불 지름으로 숨통 조였던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와 삼촌들, 엄마의 빈 젖 빨던 어린 아가의 모습, 돌덩이 화덕에 의지하던 솥 하나, 뼈들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영상으로 보이던 참사, 그 희생자는 종달리-강태용, 고두만, 고순정, 고순환, 고태원, 박봉관, 함명립, 7, 하도리-김진생, 부성만, 이성란, 이재수, 4, 가족이라는 혐의로 세화 주민 7명이 학살되어 세화리 43 희생자는 68명이라는 출처 들여다본다

 

 

2. 기억 행진으로 가다

 

 

  해녀박물관에서 세화리 주재소 터-세화리 오일장 터-연두망 동산까지 이어지는 세화리 예술제-항쟁, 연이은 행진으로 몸은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고 결국 마지막 연두망, 연듸망, 연두막, 이라는 동산은 아쉬움을 뒤로하며 구좌읍 마을회관 서쪽 동산,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해녀 노래 가사비와 최근에 세워졌다는 해녀 3인의 흉상(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여성, 제주의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 얘기를 들으며 걷고 걸었다

 

  강인한 제주 비바리 정신 떠올려보던 하루의 일정, 숭고하고 고귀한 그들의 희생정신에 묵념으로 화답해 보는 동백 송이 육십칠 절- 세화리에 가다

 

 


 

사월의 시

 

 

어느 날 내 귀에 서성대던 그 말

사월이 오면 마음이 시리고 춥다는 말

사월은 잔인한 달, 이라는 어른들의 말,

 

내 피부로 느끼지 못했던

숨은 통각기痛覺器들이

역사적 기록에 쓰일 행적들이

아직도 술렁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그 무고함에

민간인들 무더기로 덮이고

화양연화 사라지는 모습 보며

 

그때 43을 읽는다

, 피부로 느끼는 아픔들이……

 

 


 

제주 해녀

    -너의 숨만큼만 쉬었다 오거라

 

 

그럴게요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나

그만큼만 쉬었다 갈게요

 

어머니도 그랬고

어머니의, 어머니도 그랬고

저 또한 그럴진대

 

너의 숨만큼만……

 

그럴게요

그때가 언제쯤일지 모르나

하던 일 후제를 위한 그만큼만 하다가 갈게요

 

해녀 할머니도 그랬고

해녀 어머니도 그랬고

부덕량도 그랬듯

 

저 또한

후제를 위하여

하던 일 선내선네* 하다가

그때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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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을 서두르면서 시원시원하게라는 뜻의 제주어.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한그루,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