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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최기종 시집 '만나자'의 시(1)

by 김창집1 2024. 10. 17.

 

 

시인의 말

 

 

  나무에게 미안하지나 않을까? 그래도 시집을 낸다.

  인구의 반열에서 내쳐지는 시들이지만 그래도 시집으로 엮는다.

  그런데 더 이상 햇빛 보지 못하는 것들을 모아서 집을 지었더니 그럴 듯하다. 한반도 비하인드 근현대사가 펼쳐지는 듯하다.

  동학년에서 기미년으로 그리고 광주항쟁에 이르기까지 죽고 죽어도 다시 살아나던 인걸들이 하늘의 별들처럼 반짝거렸다. 우리 민족끼리 평화를 말하고 통일을 말하는 거대 담론이 흘러들었다.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화도 성토된다.

물론 당위적이고 목적의식적인 시들이다. 하지만 시가 언어의 묘미나 비유적 수사만을 말하지 않는다. 시적 아님을 드러내면서 거칠고 투박한 것들도 분청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시대를 말하고 인물상을 말할 때 살점 하나 없는 어투도 노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집이 우리나라 민중의 역사를 돌아보는 계기로 남았으면 한다. 아울러 남북일통에 대한 열기가 넘쳐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20219

남뫼시사에서

최기종

 

 


 

한탄강

 

 

어져 내 설움이야

내가 너인 줄 몰랐더냐

남북이 합작한 승일교도 돌아보고

고석정에서 물놀이도 하고 물세례도 받아주면서

더 큰 하나로 더 큰 우리로 흘러 흘러갔다면야

부딪히고 애끓는 굽이 골골마다 패었으라

 

어져 내 설움이야

내가 너인 줄 몰랐더냐

철원평강평야지 휘돌아 가는 물머리도 눌러주고

물이랑도 넓혀주고 논물도 대주고 써레질도 하고

앞소리뒷소리 하면서 못줄도 잡고 들밥도 내어주었다면야

주상절리구곡 집도 바우도 직탕으로 쓸어갔으랴

 

어져 내 설움이야

내가 이산의 물굽이인 줄 몰랐더냐

칼도 총도 쳐내고 철조망도 걷어내고

북으로 남으로 철도도 다리도 놓고 잔도도 내고

예전처럼 금강산전기차가 스륵스륵 오르내렸다면야

피어린 삼각지 어이 양안으로 갈라졌으랴

 

 

 

 

만나자

 

 

만나자

일 없어도 만나자

좋은 사람 좋은 사람끼리

그리운 사람 그리운 사람끼리

못내 만나서 그날이 되어 보자

 

만나자

어느 때라도 만나자

추석도 설일도 단오도 좋다

봄꽃처럼 북상하며 만나자

단풍처럼 남하하며 만나자

 

만나자

톡 까놓고 만나자

그러면 아픈 사랑 피어나겠지

척진 사랑도 맺힌 사랑도 풀어지겠지

못내 두근두근 없는 사랑도 생겨나겠지

 

만나자

어디에서라도 만나자

서울도 좋다 평양도 좋다

동파랑도 좋다 서파랑도 좋다

기미년의 아, 조선의 자주민으로 만나자

 

 


 

금강金剛에서 만나자

 

 

  순풍에 돛 달고 역풍에 노 저어 그리운 사람 그리운 산하 금강에서 만나자

  단풍리 금천리 내강리 지나서 만폭동 지나서 비로봉 영랑봉 중향성 굽어보며 황천강에서 세족하고 명경대에서 세수하고 금강에서 만나자

  동포 여러분 형제 여러분 이렇게 만나서 반갑다는 금강산 처녀의 물 맑은 늴리리야 금강에서 만나자

  오마니 절 받으시라우 오냐 내 아들아 살아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손도 잡아 보고 얼굴도 만져 보고 금강에서 만나자

  철조망도 콘크리트도 무너지고 소 떼도 넘어가고 비료도 넘어가고 초코파이도 넘어가고 말뚝이도 취발이도 홍대감도 넘어가고 금강에서 만나자

  북한강 남한강 합수되어 서해 되듯이 뱃길도 육로도 열리고 은하수도 이어지고 천하천강 까막까치 되어 금강에서 만나자

  끊어진 다리 우리끼리 복구하고 깊어진 냉기 우리끼리 녹여내고 통일아 냉큼 오너라 평화야 고치글라 금강에서 만나자

  코리안 코리안 퍼스트로 코리안 코리안 투게더로 조선사람 조선으로 길이길이 금강에서 만나자

  순풍에 돛 달고 역풍에 노 저어 눈물콧물 흘리면서 아리랑 아라리요 금강에서 만나자

 

 


 

중련열차

 

 

이게 얼마만일까

이것 타고 도라산에서 널문리로

삼팔선도 지우고 평양으로 신의주로 간다니

이런 벅찬 행로가 어디 있을까

 

이리 합체된다면

버겁던 고개고개 스리슬쩍 넘어가고

한계령도 추가령도 넘어서서 두만강도 굽어본다니

피스톤도 실린더도 맞물려 녹슨 톱니바퀴 돌리는 걸까

 

이리되면 비용이 얼마나 들거나

인프라도 용비도 대폭 늘어나서 동력이 꺼질거나

하지만 마주 보고 달리지도 갈라서지도 않게 된다니

남남북녀 만나서 더 큰 하나로 시너지를 내는 것 아닐까

 

이렇게 점퍼핀으로 연결한다면

남남은 상행선, 북녀는 하행선 붕붕 내달리는 걸까

아니면 남적북적 파당하면서 공회전만 계속하는 걸까

어떻든 객차 화자 늘어나서 기적 소리 대륙으로 퍼지는 걸까

 

이게 얼마 만일까

이것 다고 함흥에서 야로슬라프스키로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모스크바로 유럽으로 간다니

이러면 세기의 기적이 되는 것 아닐까

 

 

         *최기종 시집 만나자(문학들, 2024)에서

         *사진 : 민통선 안의 '두타연'에서(2014)  *민간인은 허가 받은 후 출입 허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