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ᄀᆞ시락당
어깨만 들썩여도
수평선에 두 손 모으며
백지 한 장, 쌀 한 사발 용연다리 건너서
누구의 발길이었나 향냄새 진동하네
때로는 잔잔한 바다
왜 이리 낯설까
밀리고 떠밀리다 부서지는 파도처럼
아득히 저 멀리에서 웅크리고 있느니
바다를 운명으로
펄럭이는 촛불 앞에
촛농으로 녹은 마음 촛농으로 아우르며
오늘도 안녕을 비는 바다의 수호자여
♧ 하늘 연못
연못 위로 퍼져가는 주름진 하루가
아침햇살 등에 업고 윤슬로 반짝이는
설문대 신의 품으로
한 발짝 다가선다
찰랑찰랑 숨소리 죽이며 주문을 걸듯
딱 저만큼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는
언제나 옹달샘처럼 넘치지 않게 하소서
‘이곳에 흠 있는 자, 네 죄를 사할지니’
요단강 성령의 비둘기 하늘 위로 날아들고
돌 문화 하늘 연못엔
고해성사 한창이다
---
*하늘 연못 : 설문대할망 솥단지를 표현한 제주돌문화공원 연못.
♧ 한라산의 겨울
추울수록 뜨거워지는 민초들의 결기처럼
눈 쌓인 선작지왓 서로 등 기대고
밟히면 더 단단해지는 뿌리들이 여기 있다
♧ 그날, 이후
한 치 앞도 알 수 없어 얼떨결에 벗어 던진
섯알오름 제단 위에 불도장처럼 놓여 있는
아직도 맨발이십니까 검정 고무신 한 켤레
♧ 달그락, 봄
기다린 당신의 봄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겨울 골목길에 발소리도 낮추며
살아서 돌아오리라 울먹이던 아버지
몇 번의 계절 앞에
당신은 오지 않고
무작정 찾아든 숲, 빗금 친 날들 사이
풀뿌리 근성으로 견딘 발자국이 뜨겁다
꽁꽁 언 낮과 밤
봉인된 시간을 풀며
달그락 숟가락 소리, 얼음장 녹는 소리
드디어 재회를 꿈꾸는 얼음새꽃 떨리는 손
*장영춘 시집 『달그락, 봄』 (한그루, 2024)에서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간 '우리詩' 10월호의 시(2) (0) | 2024.10.20 |
---|---|
안상근 시집 '하늘 반 나 반'의 시(1) (3) | 2024.10.19 |
최기종 시집 '만나자'의 시(1) (7) | 2024.10.17 |
계간 '제주작가' 가을호의 시(1) (2) | 2024.10.16 |
월간 '우리詩' 10월호의 시(1) (0) | 2024.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