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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오영호 시조집 '농막일기'의 시조(5)

by 김창집1 2023. 10. 25.

 

 

갠지스강 가트에 앉아

 

 

새벽 가트*에 앉아 흐르는 물을 보다

 

혼돈이 버무려진 답답한 나의 삶이

 

어머니

품 안에 든 듯

평온하고 고요하다

 

무엇을 더 보태고 무엇을 더 빼랴만

 

마시고 목욕하며 죄 씻는 사람들

 

삶에는

정답이 없듯

갠지스는 흐를 뿐

 

---

*돌계단

 

 

 

 

끝이지요

 

 

  깊은 산 토굴 앞에

  매화꽃 흔들리는 날

 

  큰 스님, 혹시 저를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소만. 그런데 이 누추한 곳까지 왜 오셨나요? 여쭤볼 말이 있어서요. 소승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습니다. 차나 한 잔 드시고 가시지요. 차향이 방안 가득 퍼질 때쯤 박새 한 마리 잔디마당에 내려앉아 지푸라기 톡 쪼아 물고 포르르 날아간다. 저도 오래전부터 황혼 길에 들었습니다. 이승을 떠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한참을 마당만 쳐다보던 스님

 

  어떻게 되긴 어떻게 되나요,

  모든 것이

  끝이지요

 

 

 

 

중도

 

 

깃발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일까 깃발일까?

 

바람이지요. 아니 깃발이요. 다툼이 끝없자 스승*을 찾아갔네

 

바람도 깃발도 아닌 자내들 마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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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慧能) : 당나라(618-907) 시대 선종(禪宗)의 제6조이자 남종선(南宗禪)의 시조.

 

 

 

 

중도 2

 

 

  큰 스님,

  크고 작음에 기준이 있습니까?

 

  없느니라 여기 세 개의 컵을 보아라 크기가 어떤가? 다 다릅니다. 중간 컵을 들고 작은 컵보다 큰가 작은가? 큽니다. 이 큰 컵보다는? 작습니다. 생각해 보거라 제일 작은 컵보다는 두 개가 크고, 제일 큰 컵보다는 두 개가 작지 않느냐? . 그렇습니다.

 

  그러니

  분별할 수 없지

  크다 작다 하지 마라.

 

 

 

중도 3

 

 

  떨어진 은행잎이

  또르르 굴러가는

 

  극락전 잔디밭을 걷고 있던 스님 둥기 둥거문고 소리에 걸음을 멈추자 큰 스님, 저 소리는 무슨 소리입니까? 거문고 소리다 조율이 참 잘 됐구나 조율이란 무엇입니까? 줄을 너무 조이면 줄이 끊어지고 너무 느슨하면 소리가 나지 않으니라 딱 맞아야 최고의 소리를 낼 수 있느니라 동자도

 

  조율된 거문고처럼 살아야 하느니라

 

 

 

             *오영호 시조집 농막일기(동학사,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