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물집
어릴 때 사다 준 크레파스로
당신의 손바닥 그렸습니다
찍히고 긁히고 갈라진 가뭄 밭
오름처럼 볼록이는 물집까지
지금쯤 터지고 납작해져
♧ 이석증
숨긴다고 허물 가려지나
덧댄다고 흠집 숨겨지나
바람이 흔들리며 가듯
구름이 묵묵부답 떠가듯
하늘과 땅 지표로 버티면 되지
♧ 사랑의 전령사
빼어난 자태 뜨거운 마음
잊을 수 없어
가을바람 편에 사뿐
당신을 사모합니다
♧ 탐라의 노을
아직 꺼지지 않은
삼별초의 눈빛 이글거린다
넘어지며 고꾸라지며 넘던 저 능선,
오늘은 탐라의 후예가
쇳불 당긴다
♧ 수장水葬
너도 한때는 물 바람 돌 틈에서
청춘 있었고 주인공이었겠지
지금은 특보랄 수도 없는 주검
물양귀비만이 조문객이구나
*양순진 디카 시집 『피어나다』 (책과나무, 2023)에서
*위 사진은 책의 것을 베낀 것이어서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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