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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계간 '제주작가' 가을호의 시조(1)

by 김창집1 2023. 10. 28.

 

 

두가시* - 김영란

 

 

삼십 년 살았어도

 

모르는 게 더 많아

 

기 싸움 줄다리기도

 

승패가 나질 않아

 

후생엔 만나지 말자

 

용케 그 뜻 일치 하네

 

제주해협 건널 무렵

 

멀미가 심했는지

 

가시버시 오던 길에

 

버시만 떼어놓고

 

아득히 멀고도 가까운

 

두가시만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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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제주어

 

 

 

 

이파리들에게 - 김정숙

 

 

팔월 햇살 아래

눈부신 초록이여

삼중수소가 어젯밤 내린 안개 같은 거라고

헛소리 떠드는 숲속

젖은 길을 걸었다

 

한때의 아름다움은 네 몫이 아니란다

 

주어진 임기 동안

열매 맺고 씨 뿌리라고

꼭대기 볕 좋은 자리에

이파리 널 앉혔다

 

가을마다 너는 너를 증명해야 할 거야

바닷바람 벌써 시들어 마른 눈물 길어 올리고

어둡고

조용한 밤은

울긋불긋

떠돌 거야

 

 

 

 

서대문형무소 곰솔 - 오영호

 

 

하늘의 높은 것을 어찌 모르려만

옆으로만 가질 뻗어 옥사보다 낮춘 것은

질곡의 비바람에도 살아남기 위함이지

 

일제의 서슬에도 저항의 뿌리는 살아

그 핏물 받아먹고 자란 조선 곰솔

오늘도 가부좌 틀고 증명하고 있구나

 

 

 

 

황근꽃 - 이애자

 

 

보리밥

닥 닥 말아

겨를 없이

살아서

 

얕게 핀

분 냄새가

너무 좋아

흠 흠 흠

 

어머니

피었다지던

절간가는

반나절

 

 

 

상사화 - 장영춘

 

 

숭숭 뚫린 현무암 올레 밖을 서성이다

 

기어이 장마 빗속에서 터져 버린 붉은 가슴

 

그대의 젖은 맨발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 계간 제주작가2023 가을호(통권8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