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4.16 추모작품]
♧ 나는 물을 이렇게 고쳐 쓴다 – 서안나
나는 물을 이렇게 고쳐 쓴다
두 손을 씻으면
위로할 수 없는 손이 자란다
고통은 유일하다
나는 물을 이렇게 고쳐 쓴다
젖은 배를 끌고 황금의 도시로 가는 자들아
나의 인간과 당신의 인간은 무엇이 다른가
나는 물을 이렇게 고쳐 쓴다
울면 지는 것이다
홀로 남겨진 것은 우리다
나는 물을 이렇게 고쳐 쓴다
물속은 폭풍우와 풍랑이다
소년과 소녀는 물의 안쪽 높은 곳에서
비루한 지상을 위로한다
나는 물을 이렇게 고쳐 쓴다
인간은 인간을 용서하려는 방식이다
나는 물을 이렇게 고쳐 쓴다
물에 찔리고 물에 부딪히고 물의
이마에 이마를 맞댄
소년과 소녀들, 나는 한 잔의 물을 마신다
물에 젖은 눈과 손과 청춘을
물에 젖은 눈과 손과 청춘으로 닦아주마
나는 물을 이렇게 고쳐 쓴다
바다가 읽는 나는 무력한 배경이다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 견고한 악몽이다
※ 시집 『새를 심었습니다』 (여우난골, 2022) 수록
♧ 신의 거처 – 손세실리아
담장 아래 수북한 풀을 뽑다가
키가 한 뼘쯤 되는 포도나무를 발견했다
포도가 익으면 무얼 할까 설레다가 SNS에
이토록 경이로운 소행의 주범은 누굴까
남겼더니 누군가 신 운운한다
순간 발끈해져
신은 맹골수도에 계시다 받아치고 말았다
바다에 계셔야 옳다고
연일 터지는 지상의 사건 사고는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신경 끄고
아이들 건사에만 전념하시라고
골고루 거둬 먹이고
추울 테니 지주 안아주라고
정 올라오고 싶거든
누구 하나 빼놓지 말고 같이 오라고
그럴 자신 없으면 거기 가만 계시라고
그날 이후 나의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
바다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된다고
* 『현대시학』 2015년 9월호 수록
♧ 세월호 아이들아,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아 - 안창흡
세월호 아이들아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아
세상이 알듯이
그 때에도 그랬단다
꼼짝 마!
움직이지 말아!
물로나 뱅뱅 돌아진 제주섬에
몰아친 4․3의 광풍
그 미친바람 안에서
백성 목숨 미물만큼도 여기지 않는
극악무도한 권력자들
총부리를 들이댄
검둥개 노랑개 서청들 앞에
분연히 일어섰지만
동백꽃 지듯 뚝뚝
수천수만의 목숨
속절없이
스러져갔지
한라산 자락에서
꺾인 목숨
제주 앞바다 수장된
억울한 영혼들은
또, 얼마인지
몸서리치며
피눈물 흘리며
살려줍써
우리 애기 ᄒᆞᆫ 목심만이라도 살려주십써
애원도 별무소용
아, 그날도 그랬어
5․18 광주민중항쟁
권력에 환장한 ᄂᆞᆷ들의 광기
꼼짝 마! 꼼짝 마!
꼼짝 마!
추악하고 무자비한 몽둥이
에누리 없는 총칼 앞에
죄 없는 백성들
민주 항쟁 깃발 아래
두 주먹 불끈 쥐고 항거하다
하나 둘 스러져갔지
금남로에서
도청 앞에서
고문실에서
형무소에서
이 산하 곳곳에서
불귀의 객이 된 민주시민들
그 얼마인지
아, 세월호 아이들아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아
4․16 너희들의 뱃길
제주로 오던 그 바당길에서
얼마나 무서 웠니
얼마나 끔찍했니
엄마, 아빠, 형제들 곁에 있고 싶어서
얼마나 동동거렸니
꼼짝 마!
움직이지 마!
어른들의 말만 믿고 있다가
아무런 잘못도 없는 너희가
수장이라니
말도 안 되는
너희의 죽음을
이 땅의 민주시민들은
방방곡곡 백성들은
눈물로 모두 지켜보았지
그 슬픔
그 두려움
그 너머의 안타까움까지
지금도 여전하지
현재진행형이지
억울한 그 죽음
죽음들
누구누구의 소행인지
누구의 음모인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바다가 알건만
아직까지도
나는 모른다
내가 한 일이 아니다
오리발 내미는
음흉한 권력자들
결코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우리는 믿는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리라는 믿음
그 믿음을
기억의 노란 리본에 새겨
너희에게 보낸다
아아, 세월호 아이들아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아
*계간 제주작가 2024년 가을호(통권 제86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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