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갠지스강 가트에 앉아
새벽 가트*에 앉아 흐르는 물을 보다
혼돈이 버무려진 답답한 나의 삶이
어머니
품 안에 든 듯
평온하고 고요하다
무엇을 더 보태고 무엇을 더 빼랴만
마시고 목욕하며 죄 씻는 사람들
삶에는
정답이 없듯
갠지스는 흐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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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
♧ 끝이지요
깊은 산 토굴 앞에
매화꽃 흔들리는 날
큰 스님, 혹시 저를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소만. 그런데 이 누추한 곳까지 왜 오셨나요? 여쭤볼 말이 있어서요. 소승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습니다. 차나 한 잔 드시고 가시지요. 차향이 방안 가득 퍼질 때쯤 박새 한 마리 잔디마당에 내려앉아 지푸라기 톡 쪼아 물고 포르르 날아간다. 저도 오래전부터 황혼 길에 들었습니다. 이승을 떠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한참을 마당만 쳐다보던 스님
어떻게 되긴 어떻게 되나요,
모든 것이
끝이지요
♧ 중도
깃발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일까 깃발일까?
바람이지요. 아니 깃발이요. 다툼이 끝없자 스승*을 찾아갔네
‘바람도 깃발도 아닌 자내들 마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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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慧能) : 당나라(618-907) 시대 선종(禪宗)의 제6조이자 남종선(南宗禪)의 시조.
♧ 중도 2
큰 스님,
크고 작음에 기준이 있습니까?
없느니라 여기 세 개의 컵을 보아라 크기가 어떤가? 다 다릅니다. 중간 컵을 들고 작은 컵보다 큰가 작은가? 큽니다. 이 큰 컵보다는? 작습니다. 생각해 보거라 제일 작은 컵보다는 두 개가 크고, 제일 큰 컵보다는 두 개가 작지 않느냐?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
분별할 수 없지
크다 작다 하지 마라.
♧ 중도 3
떨어진 은행잎이
또르르 굴러가는
극락전 잔디밭을 걷고 있던 스님 ‘둥기 둥’ 거문고 소리에 걸음을 멈추자 큰 스님, 저 소리는 무슨 소리입니까? 거문고 소리다 조율이 참 잘 됐구나 조율이란 무엇입니까? 줄을 너무 조이면 줄이 끊어지고 너무 느슨하면 소리가 나지 않으니라 딱 맞아야 최고의 소리를 낼 수 있느니라 동자도
조율된 거문고처럼 살아야 하느니라
*오영호 시조집 『농막일기』 (동학사, 202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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