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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영란 시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의 시(2)

by 김창집1 2025. 5. 6.

 

 

긴 무덤

 

 

  골로 간단 그 말뜻 이제야 알겠네

 

  농담처럼 건넸던 말 등골이 오싹한 말 비명도 안 들리는 심심산천 골짜기 에 시작도 끝도 모를 깊고 긴 구덩이, 관이 되고 무덤이 된 산내면 골령골, 등 밟고 뒤통수에 총구를 들이대는, 두 다리를 들어 올려 구덩이로 구겨 넣는, 엎드린 채 돌아보는 마지막 눈빛들, 확인사살 총성 담긴 열여덟 장 사진들

 

  반세기 지난 후에야 긴 시간의 문을 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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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6.25전쟁 발발 직후 대전시 산내면 골령골에서 7,000여 명의 민간인

이 학살되었다.

 

 


 

남바람꽃

 

 

  안부를 묻는 것도 불안불안 했었지

 

  해안선 5킬로 이내로 하산하란 그 명령 바들바들 떨렸지 거처할 곳 없었지 세 차례 개명으로 난세를 타고 넘었지 바람의 땅에선 바람처럼 살아야 해 한라 산바람 남방바람 아냐 그냥 남바람이라 할 거야

 

  사월의 중산간 들녘

  소곤소곤 바람 분다

 

 

 


 

봉근 둥이*

 

 

동네에서 하나둘 남자들이 사라졌다

할아버지

아버지

큰형

작은형

 

어머니 혼자인데도

동생은

 

 

뒷집에도 아이울음 조심조심 흘렀다

딸만 있던 그 집에

고추 달고 나온 아이

 

기쁜 날 그 집에서는

곡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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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워온 아이라는 뜻으로 배우자가 아닌 관계에서 난 자식을 이르는 제주어

 

 


 

조천朝天

 

 

간절한

촛불 하나

지키고 싶던

스무 살

 

거꾸로 매달려

찢어놓던 하늘가에

 

꼿꼿한 가문의 핏줄

하르방손지* 있었다

 

 

떠도는 바람 따라

의문사**로 돌아온

 

시간의 근황을

꼼꼼히 더듬으며

 

거스른 세월을 풀고

밝아오는

아침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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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할아버지의 그 손자라는 뜻으로 김용철의 할아버지는 일제에 항거해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유공자이다.

** 19483, 조천지서 김용철 고문치사사건

 

 


 

돌매화

 

 

눈부신 고독이라야 찬란히 빛이 나죠

절벽 끝 바위틈에 외발로 선다 해도

순백의 향기를 품고

피어나는 사랑처럼

 

흔들리지 않으려고 자꾸 키를 낮췄어요

해맑고 투명하게 살아보고 싶어서

남들이 가지 않은 길

혼자서 걸어왔죠

 

하늘이 내어준 그만큼의 자리에서

서둘러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면

마지막 인사말쯤은 바람에게 맡겨요

 

 

                      *김영란 시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한그루,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