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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4월호의 시(완)

by 김창집1 2025. 5. 10.

 

 

겨울 별천포 여형연

 

 

좀 더 걸어 올라가야 할 능선이 있었다

동파한 별의 무게가 아래로 쏟아졌다

항상 남쪽이 그리워

따뜻한 술을 삼켰다

 

혀는 자주 데이면서도

낯선 돌기의 언어를 전하고 싶어 했다

모래밭의 점자판, 검은 뼈들

개 짖는 소리가 멀리 들리고,

수평선으로 출항한 배들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히말라야 산정 아래에서

따뜻한 국을 끓이며

한 생애를 탕진하기로 했다

 

뉴스를 들을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벌천포가 아니라 발간포 같았다

밤이면 공습이 두려웠다

 

가장 충격적일 때 사람의 살냄새가 그립다

내가 편백나무와 한잔하고 취할 때

산정에 내리는 폭설을 보았다

죽은 자가 꿈속에서 보였다

 

바다로 내리는 눈이 적체될 때

핏속의 별이 따뜻하게 떠올랐다

내 모든 이별의 밤들,

죽은 자의 침낭은 따뜻하길 원했다.

 

 


 

거울 속 배철성

 

 

소실점을 찾아본다

거울 속 가시거리 너머 그 끄트머리

오늘 내가 걸어가야 할 지점

고요 속 잠깐의 긴장이 목젖을 건드린다

 

아직 잠에서 덜 깬 하루를 거울 속에 집어넣고 전원을 켠다

거울은 트롬 스타일러처럼 흔들리고

어제의 잔해들이 분진처럼 거울 속에서 휘몰아친다

이내 거울은 잠잠해지고

 

거울 속에는 무수한 내가 있다

차곡차곡 쌓아 둔 어제들

매일 거울 속으로 사라지는 나는

매일 거울 속에서 태어나는 오늘을 찾는다

거울 속 켜켜이 숨어 지내는 무수히 많은 나 중에

어제와 다른 나를 찾아야 하는 매트릭스

 

나도 잊어버린 나의 어제를

거울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나와 마주한 또 다른 나를,

거울 속으로 사라진 그 많은 나를,

 

빙하처럼 빼곡히 접힌 거울 속

미처 이루지 못한 나의 나머지들이

가늘고 예민한 초점 거리에서 웅성거리지만

미끄러운 거울 겉은 티끌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구겨진 어제를 매일 거울 속으로 집어넣고

아침마다 새로운 오늘을 끄집어낸다

하루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질수록

오늘은 어제가 탐탁지 않겠지만

납작한 거울은 매일 무게를 깎아 내고 평정심을 유지한다

 

나는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스타일러에서 갓 꺼낸 셔츠처럼 뚜벅뚜벅 거울에서 걸어 나온다

 

 


 

분재 - 윤순오

 

 

무슨 억하심정으로

저리 친친 오라를 지웠을까

옹기종기 봄볕 장마당에 나은 곰솔

정성 몇 삽 버무려

남풍이 드는 창틀에 앉혔더니

우거진 화색이 제법 푸르다

묶인 기형을 풀어 주자

차츰 허리를 펴는 곁가지

우듬지 틈새를 벌고

새로운 용기가 빼꼼히 솟는다

 

귀뚜리 소리에 철이 바뀌고

갈색 가리 듬성듬성 털어 내더니

이내 추위에 드는 당당한 기다림

볕들면 다투어 피어날

작은 탄생을 위해

애써 꼿꼿한 기다림이 대견하다

 

 


 

뿌리의 힘 이규홍

 

 

오래된 나무는

땅 속 깊은 곳에

뿌리를 박고

그 뿌리의 힘으로

커다란 몸체를

견고하게 지탱해 간다

알아주는 이 없어도

마음 깊은 곳에

뿌리 내리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뿌리는 깊다

따뜻한 세상을 향해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뿌리의 영역을 넓혀 가는

사람의 마음은 한없이 깊다

 

 


 

빛바랜 사진 이산

 

 

빛바랜 사진 속에 너덧 살 내가 있다

박제된 호랑이를 타고

 

할아버지의 미소에 안긴 채

어깨를 움츠리며 눈동자는 떨고 있다

살아 있는 호랑이를 타고

 

그러나

그때의 두려움은 가늠할 수 없다

누구도 지나간 것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것이기에

 

단지 땀과 고통으로 오염된 늙은 눈으로

바라보는

어린아이만 있을 뿐

 

 

                        *월간 우리20254월호(통권 442)에서

                                  *사진 :  요즘 한창인 다래나무 꽃